지난 6월 경북 고령군 12개 창고에 의료폐기물을 불법으로 보관하다가 적발된 사건은 넘쳐나는 의료폐기물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의료폐기물은 감염성 때문에 일정 시간을 넘기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기본인데, 그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의료폐기물 처리의 현주소다.

이정윤 편집부국장

물론 의료폐기물을 불법으로 보관한 업자는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차제에 불법보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여건을 우리 사회가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반성과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의료폐기물 처리 인프라는 한마디로 위태롭다.

노령화에 따른 의료수요가 급증하면서 덩달아 의료폐기물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소각장 등 처리장은 제자리걸음이다.

의료폐기물 발생량은 2013년 14만톤에서 2018년 23만톤으로 5년새 57%가 늘었다.

지난해 발생량은 이미 전국 허가용량(22만2000톤)을 넘어섰으며 국내 전체 처리가능용량(24만톤)에 육박하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일부 의료폐기물은 제때 처리하지 못한 채 어딘가에 방치될 위협에 놓였다.

환경부도 감염성 낮은 환자 일회용기저귀를 일반폐기물로 재분류하는 등 의료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추진 중이지만 본질이 아닌 대증요법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나 의료계를 중심으로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의료폐기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계속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폐기물 처리가 더딘 까닭으로 소각장 부족을 꼽는다.

의료폐기물은 반드시 전용소각장에서만 소각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소각장들이 넘쳐나는 의료폐기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고, 주민 반대로 전용소각장 증설도, 신설도 쉽지 않다.

진퇴양난이다.

그래서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대형 의료기관안에 자가멸균시설을 설치해서 의료폐기물을 멸균분쇄한 후 감염성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 일반소각장에서 태우자는 것이다.

하지만 대형의료기관에서 멸균분쇄하는 일이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학교(대학 포함)로부터 200미터 이내에 멸균분쇄시설(폐기물처리시설)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교육환경보호법 때문이다.

병원계를 중심으로 2010년부터 병원내 멸균분쇄 허용을 요청했으나 정치권으로부터 번번히 외면당했다.

병원내 멸균분쇄시설 설치를 허용하는 교육환경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나 정치권은 여전히 미적되고 있다.

교육환경보호법의 정신은 유흥업소와 같은 교육환경을 해치는 업종의 차단에 있다.

감염성 폐기물을 포장만해서 외주처리하는 것보다 해당 의료기관에서 자가시설을 이용해 멸균처리 후 외부로 배출하면 더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 권장할 사안이다.

게다가 거동이 불편하고 면역이 약화된 환자를 입원치료하는 의료기관의 공공성, 특수성을 고려해 이번에는 병원내 멸균분쇄시설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정치권은 긍정적으로 반응해야 하는게 옳다.

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삶을 살피고 애로를 해결하는 일이다. 의료폐기물은 이미 사회적 문제로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정치권이 넘쳐나는 의료폐기물에 관심을 갖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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