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대다수가 폭언·감정노동 경험…"신체·정신적으로 지쳤다" 70.6% 응답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폭언·폭력과 감정노동, 병원 내 갑질문화로 인한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정신적 소진’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2019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9.2%가 폭언을 경험한 사례가 있다고 응답했으며, 폭행 경험 13%, 성폭력 피해 경험도 11.8%로 나타났다.

주요 직종별로 비교해 보면, 폭언 피해 경험은 간호사가 79%로 가장 높았고, 간호조무사 61.7%, 사무행정·원무 57%, 방사선사 51.3%, 임상병리사 45.4% 순으로 나타났다. 폭행 피해 경험도 간호사가 16.2%로 타직종에 비해 높았으며, 간호조무사 9.5%, 방사선사 6.2%, 사무행정·원무 4.5%, 임상병리사 2.1%로 나타났다. 성폭력의 피해 경험은 간호사 직종이 14.5%로 가장 높았으며 방사선사가 4.5%로 가장 낮았다.

폭력의 주된 가해자는 폭언의 경우 환자가 68%로 가장 높았으며 보호자 53.6%, 의사 32.1%, 상급자 20.6% 순으로 조사되었다. 성폭력의 주된 가해자는 환자가 81.2%이며 보호자가 19.2%, 의사 9.7%, 상급자 5.6% 순이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이 취하는 대응방식은 문제해결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소극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다수의 폭언,폭행 피해자가 주변의 아는 사람에게 하소연하는 것을 포함해 스스로 참고 넘겼다고 응답했으며, 병원 내 노동조합이나 고충처리위원회 등을 통해 공식적인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는 응답자는 3% 미만이었다.

병원 내 갑질문화 피해 응답도 함께 나타났다. 병원의 갑질은 근무시간 조정이나 강제 휴가사용 외에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기부금, 기금, 회비 등을 납부하게 한 사례가 26.7%, 업무와 무관하게 사적인 일을 지시받은 사례도 15.4%로 나타났다. 아울러 직원들이 의료용품과 같은 비품을 사비로 구입하게 한 사례가 22.8%로 나타났다.

직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도 다수 발견되었다. 외모, 연령, 학력, 성별, 비정규직 등을 이유로 인격이 비하된 사례가 11.5%로 나타났다. 가장 심각한 것은 직원들이 일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감시당한 사례가 19.8%로 10명중 2명은 병원의 감시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 "신체적·정신적으로 지쳤다" 70.6% 응답…폭언·감정노동 예방에 실효성 있는 대안 필요

보건의료노동자가 근무도중 겪는 감정노동 또한 타 산업에 비해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근무도중 10명중 9명(89.5%)은 자신의 감정을 참으며 일하고 있었고, 퇴근 후에도 힘들었던 감정이 남아 있다는 응답자가 80.2%였다. 특히 부당하거나 막무가내의 요구로 업무수행의 어려움이 있다는 응답자도 69.1%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이 같이 심각한 감정노동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공식적인 규정이나 절차가 있다는 응답은 31.4%에 불과했으며, 감정노동 대응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다는 응답자도 30.4%에 그쳤다.

주요 직종별 감정노동 소진도를 보면 타 직종에 비해 간호사가 감정노동을 더 심하게 겪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다른 직종보다 환자 및 보호자 대면 업무가 많은 간호조무사, 사무행정·원무직의 감정노동 수행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서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53.6%만이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으며, 오히려 신체적·정신적으로 모두 지쳐있다는 응답이 70.6%로 나타났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유지하지 못한 채 지치고 소진당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 보건의료노조의 설명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법안 외에도 실효성 있는 정부의 대응방안을 촉구하고 나섰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나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같은 신설 법들이 의료기관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있게 작동할지는 의문”이라면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고 있는 의료기관에 만연한 폭언, 폭행, 직장내 갑질, 괴롭힘 등의 감정노동은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강력한 정부의 대응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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