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10>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

[의학신문·일간보사] 스위스 전설 속 영웅이 한 명 있다. 스위스의 독립운동가이자 뛰어난 궁수였던 윌리엄 텔(빌헬름텔-독일어, 기욤 텔-프랑스어)이다. 배경은 13세기 말로 당시 스위스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주인공인 윌리엄 텔은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고통 받고 있는 동포들을 보며 자유를 되찾기 위한 의지로 불태우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총독인 헤르만 게슬러가 거리에 긴 장대를 세우고 그 위에 자신의 모자를 걸어 놓으면서 시작이 된다. 게슬러는 스위스인들에게 그 모자를 오스트리아 황제로 간주하여 지나갈 때 꼭 절을 하도록 강제 명령을 내린다.

어느 날 윌리엄 텔이 아들과 함께 그 곳을 지나가면서 모자에게 경례를 하지 않는 모습을 게슬러가 보게 된다. 화가 난 게슬러는 윌리엄 텔에게 ‘아들의 머리에 사과를 얹어놓고 100보 떨어진 곳에서 그 사과를 명중시키면 면죄부를 주겠다’고 잔인한 제안을 한다. 윌리엄 텔은 뛰어난 명성에 걸맞게 아들 머리 위의 사과를 명중시킨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게슬러의 폭력적인 독재에 대한 분노의 표현으로 텔은 이 일이 실패할 경우 총독을 쏘려는 의도로 두 번째 화살을 숨겨놓았고, 이런 두 번째 화살이 발견되면서 그는 바로 체포되고, 감옥으로 이동하기 위해 게슬러와 함께 배를 타고 간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폭풍우를 만나고 그 틈을 이용해 텔은 원래의 의도대로 두번째 화살을 게슬러의 가슴에 명중시키고, 결국 스위스는 자유를 되찾는다.

스위스 독립 스토리 음악으로 재현

우리가 알고 있는 이 감동적인 영웅 스토리를 음악으로 재현해 낸 작곡가가 바로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인 로시니(Rossini)다.

19세기는 오페라에 있어서 황금시대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한 무대 의상과 스펙터클한 무대 효과, 다양한 주제를 묘사하는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오페라’라는 장르는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였다. 오페라 음악은 오페라 하우스뿐만 아니라, 울타리 밖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인기몰이 오페라의 멜로디를 발췌하여 가정이나 살롱에서 쉽게 연주될 수 있도록 피아노 곡으로 편곡되었고, 때때로 오페라의 축약 버전이 일반 대중들을 위한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상류층의 엘리트 문화오락이었던 오페라가 다양한 형태로 서민들에게 부각되면서 모든 계층의 환호를 받는 장르가 된 것이다. 이 시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작곡가가 바로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음악가를 물어 본다면-비슷한 시기에 유명세를 탔던 베토벤이 아닌- 바로 로시니라고 대답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엉뚱한 재치와 뛰어난 유머 감각의 소유자였고, 미식에 대한 열정이 유별났으며, 게으르고 질투가 많은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작곡가의 인간적이고 재미있는 성품이 음악에 반영되어서 일까. 그의 오페라들- 희극오페라와 진지한 오페라- 모두 대중의 깊은 공감대를 얻어내었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무척이나 재미있거나 혹은 진지한 줄거리를 비롯하여 귀에 쏙쏙 들어오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그리고 빠른 템포로 몰아가면서 동일한 멜로디를 무한 반복, 점점 커지면서 흥분에 가득찬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 효과로 말미암아 큰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로시니가 1829년 마지막으로 작곡한 작품이 ‘기욤 텔 (윌리엄 텔)’이다. ‘기욤 텔 (윌리엄 텔)’은 파리 오페라 극장을 위해 작곡되었는데, 당시 프랑스에 살고 있었던 이탈리아 작곡가가 작품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에 프랑스어로 쓴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대본은 독일 작가인 쉴러의 ‘빌헬름 텔’에 근거하였으며, 무려 4시간이 넘는 대작품으로 중간에 큰 스케일의 합창, 발레, 춤곡, 행렬 등이 들어가 있어서 쉽게 무대에 올리기 어려운 작품이다. 특별히 이 작품은 테너 파트에 극한 고음을 요구하고 있다. 주인공인 윌리엄 텔(바리톤)과 함께 스위스의 독립을 위해 싸운 아르놀드역의 테너 음역이 수십 번의 고음을 불러야 하기에 왠만한 테너들은 시도조차 못하는 곡이다. 세계적인 테너인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음반 작업만 했을 뿐, ‘자신의 목에 지나치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무대 출연을 거부했다고 한다. ‘윌리엄 텔’은 로시니가 13일 만에 작곡한 희극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와 함께 그의 오페라 중 대표작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이유이다.

오페라 ‘윌리엄텔’ 서곡 감상 추천

이러한 ‘윌리엄 텔’을 음악으로 수월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필자는 이 오페라의 서두에 연주되는 서곡을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네 개의 에피소드로 전개되는 12분 남짓의 서곡을 듣다 보면 마치 윌리엄 텔의 영웅담을 영화로 본 듯한 착각에 빠진다. 첫 시작은 먼동이 트는 평화로운 스위스의 새벽을 묘사하고 있으며, 두 번째 파트에서는 현악기의 불안한 주제가 오스트리아와의 압제를 암시하는 듯 하며, 곧 이어 들리는 투티(Tutti) 부분-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 은 마치 독재자에 대항하여 싸우는 스위스의 애국자들을 묘사한 듯하다. 이 폭풍우가 한바탕 지나가고 세번째 파트에서는 마치 평화로운 스위스의 알프스 전경을 보는 듯 하며,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네번째 피날레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압제에서 벗어난 스위스의 행진을 묘사한다. 피날레는 승리를 알리는 트럼펫 오프닝과 함께 달려오는 기마병의 말발굽 소리로 시작하여 점점 흥분과 기쁨이 고조되면서 민중들의 힘찬 환호 가운데 곡을 마친다.

스위스 국민들은 포기하지 않는 투쟁 끝에 자유를 얻어낸 윌리엄 텔을 국민영웅으로 생각하며 존경한다고 한다. 점점 열기가 더해지는 여름을 앞 둔 지금,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윌리엄 텔’ 서곡을 감상하며 잠시 승리의 감동에 잠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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