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O가스 단시간 내 노출 기준 부재…배출량 관리 기준도 미비 ‘사각지대’
유독성에도 확실한 효과 및 경제성 이유로 사용, 대안 멸균 방식 필요성도 대두

[EO가스의 습격] 미국發 EO가스 사용시설 폐쇄 파동…국내 안전성은?

의료 기구들을 멸균을 할 때 사용하는 EO가스가 사용시설 주변에 노출될 경우 암 발생을 상승시키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국에서 관련 멸균 위탁 시설의 폐쇄조치에 나서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산화에틸렌, 'EO'는 미국 정부기관의 연구결과 암을 유발하는 유독 물질로 알려져 있으나, 높은 효용성으로 의료기구의 가스 멸균에 사용된다. 유독성을 고려해 EO 공정에서는 국소배기장치 또는 전체환기 시설을 갖춰 외부로 배기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 일리노이 주(State of Illinois)에서 정화를 거친 뒤 배기된 EO가스가 장기적으로 사용시설 주변에 노출돼 거주민들의 암 발생률을 상승시킨 것으로 드러나면서, 해당 EO 멸균 위탁 시설이 미 일리노이 주 환경청에 의해 폐쇄조치 됐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서는 EO가스의 상당한 배출량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달리 상세한 배출 관리 및 허용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EO가스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규제당국과 실제 개발사들 사이에서도 사안의 심각성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간보사·의학신문은 한국은 과연 'EO가스의 안전한 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지' 여부와 대책 마련에 대해 연속으로 조명한다.

[연재 순서]

① 美 EO가스 사용시설 폐쇄, 무엇이 문제였나?

② 국내 의료기관, 정부 부주의 속 EO가스 '무방비 상태'

③ 지켜보는 정부, 시장논리 따르는 멸균의료기기업계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미국 일리노이 주 환경청이 최근 주변 지역민들의 발암 위험을 높인다는 이유로, 스테리제닉스의 EO(산화에틸렌) 사용 멸균 위탁시설을 폐쇄하면서 EO가스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유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의료기관에선 '멸균 효과'를 이유로 안전기준 준수를 명분으로 EO가스 멸균기가 널리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상 EO가스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해외에서는 미국과 멕시코의 10개소 병원에서 4개월 이상 EO가스를 취급한 73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혈액세포에 변이를 일으켜 백혈병 및 암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드러나며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국내 연구에서도 EO에 노출된 근로자에서 백혈병의 발생률이 높고, 임신 중에 EO에 노출된 병원 직원에서는 자연유산율이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약 11%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1년 국내 A병원 중앙공급실에서 22년간 EO가스 멸균기 취급 업무를 담당하는 김 모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EO가스 중독에 의한 골수이형성증후군으로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았다.

◆ 국내 EO가스 단기간 노출기준 부재·의료기관, 정부 부주의 속 '무방비 상태'…‘관리 사각지대’ 노출된 의료기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09년에 조사한 ‘화학물질 유통 및 사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화에틸렌 조사대상 사업장의 업종별 사업장 분포현황은 종합병원이 51%, 일반병원이 17%, 제조업이 7%로 나타났다. 업종별 근로자수 비율은 종합병원에서 종사하는 근로자수가 8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한 조사대상 사업장의 업종별 산화에틸렌 사용 공정 및 공정별 용도에서는 의료기관의 멸균 공정이 45%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각 공정에서 노출된 근로자 수는 멸균공정에서 가장 많은 66%의 근로자가 노출되어 있었다.

이처럼 EO가스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의료기관이 다수 분포되어 있고, 기관 내 종사자의 다수가 산화에틸렌에 노출되어 있는 등 정부의 관리기준이 다소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의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기준

우선 선진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산화에틸렌 시설 작업자에 대한 단시간 노출 기준이 부재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기준 고시에 따르면, 산화에틸렌의 경우 8시간 노출 기준인 TWA를 1ppm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단시간 노출 기준인 STEL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미국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ACGIH)나 미국산업안전보건청(OSHA)에서는 산화에틸렌의 TWA를 1ppm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단시간 노출기준인 STEL에 대해서 ACGIH는 30분 동안 TWA 기준의 3배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OSHA에서는 15분간 5ppm으로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배출기준이 미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환경부 조사 자료에 따르면, 산화에틸렌은 사업장 내 배출량이 34,701kg, 위탁처리량 25,918kg으로, 내분비계 교란물질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져 특정대기오염물질로 분류된 염화비닐보다도 약 4,000kg 더 많이 배출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배출 관리 기준은 부재한 상황이다.

또한 지난 4월 환경부에서 ‘2020년 시행 대기배출허용기준에 대한 확정 공포’를 발표했으며, 특정대기유해물질 기준 신설에 대한 내용을 밝혔으나 EO가스는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

◆ 안전성과 맞바꾼 EO가스의 멸균·소독 효과성…대안 마련 필요

EO 사용 멸균기구

이 같은 EO가스의 위험성과 다소 미비한 안전관리 기준에또 불구하고, 의료기관들이 EO가스 사용 멸균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확실한 멸균 ‘효과성’ 때문이다.

산화에틸렌은 반응성이 매우 큰 특징을 지녀, 강력한 살균제로 쓰인다. 특히 살균능력이 좋으면서 금속부식성이 없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 열에 약한 고무장갑, 정교한 수술기기, 주사기, 전기기구, 내시경장비, 마취기구 등 열 민감성 기구의 가스멸균 공정에 자주 사용된다.

B대학병원 중앙공급실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이나 유럽보다 EO가스 멸균기를 많이 사용하고 의존도가 높다”며 “EO가스의 유해성에 대해선 이미 인지하고 있지만 다른 멸균기에 비해 경제적이고 효과가 좋다보니 멸균방법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환경측정을 통해 규정에 맞게 노출 여부 등을 1년에 2회 확인한다. A대 병원의 경우 음압시설과 카트리지 보관, 보호 장비 착용을 철저하게 준수한다”면서 “그러나 다른 병원이 어느 정도로 준수하는 지는 모두 알지 못한다. 또한 병원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준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EO가스 안전문제는 손쓸 수 없다 본다”고 밝혔다.

국내의 배출 기준 등이 미비한 상황에서 미국처럼 배기된 EO가스가 누적될 경우 지역 주민들의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대해 국내 의료기관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멸균기에서 배기된 EO가스가 일으킬 위험성에 대해 국내 의료계는 아직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의료기관 주변에 대학가와 아파트 단지 등 주택가가 자리한 것도 문제다. 실제 서울 주요 대학병원들의 경우 1km 이내에 대학교 캠퍼스와 아파트 단지가 위치해 있어, EO가스 멸균기에서 EO가스가 배기될 경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어 B대학병원 중앙공급실 관계자는 “EO가스 자체가 유독성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있으며, 엄격한 기준 마련과 함께 궁극적으로 EO가스 멸균기 사용을 줄여야 한다”며 “다른 멸균방식의 대안 마련 필요성도 함께 느낀다”고 강조했다.

3부- <지켜보는 정부, 시장논리 따르는 멸균의료기기업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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