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을 돈은 악착같이 받아내고 줄 돈은 있으면 준다.'

지독한 구두쇠 ‘스쿠루지’ 얘기가 아니다. 우리 정부의 행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보건복지부가 의료급여 환자들의 진료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데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상습적으로 체불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이정윤 편집부국장

의료급여 늑장지급이나 상습 체불에 화가 난 한 의사단체가 보건복지부 등 정부를 상대로 도대체 왜 상습 체불하는지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세워달라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의료급여 진료비란 의료급여법에 따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환자 본인부담금을 제외한 금액을 정부나 지자체가 지불하는 비용을 말한다.

자립능력이 뒤떨어지는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회가 합의해 실행하는 사회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의료급여제도가 도입된 후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의료급여 진료비 지급실태를 보면 2008년과 2009년 두 해만 제때 지급하고 나머지 21개년동안 체불했다.

23년간 미지급 금액이 6조9141억원에 달하는데 대부분(5조3088억원)이 보건복지부가 지급해야할 몫이다.

지난해에도 체불은 계속됐는데 미지급금이 8695억원에 이른다.

전년(2017년 4386억원)보다 두 배나 늘어난 규모다.

법을 지켜야 할 정부가 악성 체불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있는 셈이다.

의사단체들은 정부의 이런 행태에 ‘직무유기’ 용어를 동원한다.

올해 예상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151만명이다.

이들이 정부를 믿고 전국 의료기관에서 어렵지 않게 진료를 받고 있는데 그 진료비를 내줘야 할 정부가 비용을 내지 않는다면 병의원은 손가락을 빨며 살아야 하는가.

체불한 금액이 전체적으로 보면 그 비중이 낮다며 의료계의 엄살이라고 치부할지 몰라도 국민이나 기업이 조금만 체불해도 체불 이자를 더 받고 압류까지는 하는 정부가 체불을 상습적으로 하는 행태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정부의 기본은 신뢰다.

지급해야 할 돈은 제 때 지급하는 게 맞다.

게다가 의료급여를 장기적 상습적으로 지급하지 않고도 늑장 지급분에 대한 이자는 한 푼도 없다.

예전에 주차위반 과태료가 정액제로 시행된 적이 있다.

5년이 지나도 과태료가 똑같으니 빨리 낼 이유가 없는 이치와 같다.

의료급여 환자를 진료한 병의원이 그 진료비를 제때 받지 못하면 필요한 만큼 이자를 내고 빌려 써야 하는 일도 생긴다.

대형병원은 몰라도 적자 한계선에 몰린 영세 의원들은 절박한 상황에 몰릴 수 도 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의료급여법을 다시 한번 확인하길 당부한다.

의료급여법은 의료기관이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진료 후 심사청구를 신청하면 15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고 지급권자(정부나 지자체)에게 통보하면 지급기관은 지체없이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늦어도 한 달을 넘겨서는 안되는 것이다. 변제기일을 넘기면 이자라도 보태줘야 한다.

의료급여비 지급과 관련, 정부의 모순된 행태는 즉각 시정돼야 한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