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절개 없이 호흡보조 할 수 있는 치료…근육장애인 자매 1000번째 환자 사연 소개

[의학신문·일간보사=정윤식 기자]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가 중증 호흡부전 환자에게 기관절개 없이 호흡보조를 할 수 있는 비침습적 인공호흡기 치료 1000번째 환자를 최근 성공했다고 23일 밝혔다.

이와 함께 강남세브란스병원은 1000번째 환자의 사연을 소개했다.

언니인 방은주씨와 최원아 교수

1000번째 사연의 주인공은 방은주, 방은정 씨 자매이다.

자매는 지난 9일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을 찾았는데 이들은 근육병으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인해 호흡마비가 발생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호흡재활을 통해 삽관이나 기관절개를 하지 않고도 위중한 시기를 잘 넘겼고 이제는 필요할 때만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면서 호흡마비 걱정 없이 예전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돼 지난 18일 퇴원했다.

호흡재활을 담당하고 있는 최원아 교수(재활의학과)는 “비침습적 인공호흡기 적용 1000예의 기록은 알려진 문헌상으로는 단일 기관 세계 최초”라고 밝혔다.

또한 최 교수는 “지난 2000년에 국내 최초로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호흡재활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중증호흡부전 환자의 조기 발견 및 치료 시스템이 체계화됐다”며 “이를 통해 기관절개 시술을 최소화함으로써 많은 환자가 호흡곤란의 고통과 절망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호흡재활 치료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난도 폐이식 등의 치료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할 수 있다는 부분도 강조한 최 교수이다.

그는 “호흡재활 1000예의 치료를 통해 근육 질환 480예, 루게릭 병 281예, 척수성 근위축증 46예, 척수손상 94예, 기타질환 99예의 환자가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호흡보조가 필요한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장기적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기관절개를 시행한 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는 침습적 방법이다.

말하기, 먹기 등에 장애를 받게 되고 호흡기계 감염의 원인이 되는 등 부작용 및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비침습적 인공호흡기는 기관절개나 기도삽관을 하지 않고 호흡을 보조하는 방법이다.

이동용 소형 인공호흡기를 사용해 인공호흡기를 이용하면서도 일상 활동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다.

침습적 인공호흡기의 부작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고 호흡기계 합병증으로 인한 입원 횟수와 기간도 줄일 수 있다.

또한 기도절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환자가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의 심리적 부담 및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최원아 교수는 “호흡 부전의 여러 증상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기관절개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인공호흡기 사용을 거부하던 환자들이 인공호흡기를 쉽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수명 또한 상당 기간 연장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이어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비침습적 인공호흡기 적용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다양한 호흡 재활 도구가 개발됐고 정부의 재정 보조도 이뤄지면서 비침습적 인공호흡기를 사용이 용이해진 만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호흡부전 환자가 더 나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앞이 캄캄해졌다. 아무리 힘을 줘 가슴을 부풀려 보아도 굳어버린 몸은 움직임을 거부했다. 뻐근한 가슴, 흐릿해져 가는 의식 사이로 위급하다고 외치는 소리들과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들 그리고 울먹이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방은주(43), 방은정(41) 자매는 언제나 함께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희귀 근육병을 앓아왔던 자매는 둘이자 하나였고 서로에게 전부였다. 언니 의 상태가 위독해져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실려 오던 날, 은정 씨는 다른 이의 도움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몸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의식이 흐릿해져 가는 언니의 손도 잡아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억울한 눈물이 터졌다.

그래서였을까.
퇴원을 앞둔 은주 씨와 은정 씨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도 밝았다.

“퇴원하게 되니 정말 기뻐요. 특히 병원에 처음 왔을 당시에는 언니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었는데 비록 인공호흡기를 계속 착용해야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에요.”

퇴원의 소감을 묻는 말에 언니의 상태부터 챙기는 은정 씨는 역시 언니 바라기다.

“사실 언니가 24시간 호흡기를 착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호흡기를 착용하면 아무래도 거동이 더 불편해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힘들어질 텐데 어쩌나 싶었죠. 하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호흡기 덕분에 언니가 안정적으로 호흡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도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상태에는 빠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생겼어요. 정말이지 강남세브란스 호흡재활센터에서 치료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13살부터 걷지 못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던 언니와 한창 피어나던 17살 나이에 돌연 걸을 수 없게 된 동생. 이들 자매에게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투쟁이자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들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어렸을 때 부모님과 지방 병원을 찾았다가 희귀병이라고, 20살 전에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천진하게 웃으며 마냥 놀기 바빴던 저를 바라보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눈물 흘리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라요.”

근육병은 근력이 점점 소실되는 진행성 질환으로 호흡근육과 심장근육 마저 손상을 입으면 호흡곤란, 심부전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질병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희귀 난치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제도적 지원이 최근에 와서야 일부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의료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한 채 생을 달리하는 희귀 근육병 환자들이 많다. 두 사람도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를 찾기 전까지 자신들에게 필요한 치료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냥 장애 정도로 생각했었어요. 우리 주변에서 근육병 환자를 찾는 건 쉽지 않잖아요?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조금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늦게 왔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어찌나 슬프던지,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내가 근육병이라니. 정말… 무서웠어요.”

위독한 상태로 응급실에 입원한 언니 은주 씨는 호흡곤란으로 기도 삽관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은주 씨는 괴로운 상태에서도 기도 삽관을 완강히 거부했고 긴급 호출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 온 호흡재활센터 의료진들에 의해 인공호흡기를 장착하여 동맥혈가스분석검사를 실시했다.
그 당시 그녀는 몸속에 이산화탄소가 급격하게 축적되고 있었다. 정말로 위급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기도삽관만은 하기 싫었어요. 그걸 하는 순간 몸뿐만이 아니라 정신마저 죽어 버릴 것 같았어요. 다행히 호흡재활센터에서 인공호흡기를 달아주셨고 제 이산화탄소 수치는 점점 줄어들었죠. 처음엔 불편했는데 지금은 착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숨 쉬는 게 힘들다는 느낌을 받아요.”

언니 은주 씨가 호흡기 너머로 이야기를 건넸다. 가쁜 호흡이나마 들숨 날숨 자유로이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한 얼굴이었다. 그만큼 자유롭게 숨을 쉰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호흡부전을 겪는 근육병 환자들의 경우 대부분의 병원에서 기도 절개를 시도한다. 그러나 기도 절개는 수월한 호흡은 가능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환자의 일상생활은 더 이상 영위할 수 없게 만든다. 기도 절개 후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게 되면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며 음식도 제대로 섭취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래와 같은 분비물도 많이 생성돼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 삽관은 근육병 환자들에게는 최후통첩과도 같다.

이를 알기에 강남세브란스 호흡재활센터는 비침습적 인공호흡기를 이용하여 호흡부전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비침습적 인공호흡기는 기관절개나 기도 삽관을 시행하지 않고 환자의 호흡을 보조해 주는 방법으로, 이동용 소형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호흡기를 착용하고도 충분히 사회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생활한다는 게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모든 것이 감사해요. 특히 동생 은정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매일 함께 있어서 그저 당연한 줄만 알았는데 우리가 함께 눈을 뜨고 감으며 같이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진지 이번에야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더 소중하고 더 미안해요. 사랑해. 내 동생 은정아.”

눈물을 흘리며 진심을 전하는 언니 은주 씨의 목소리에 옆 침상에 앉아 있던 은정 씨가 빨갛게 달아오른 두 눈을 훔쳤다.

보고 싶어도 고개조차 돌릴 수 없고 떨리는 두 손 내밀어 잡아 줄 수도 없는 두 자매는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다. 그녀들은 때로는 자매로,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보호자로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매 순간을, 한 고비 한 고비 넘어서며 함께 성장해 왔다. 비록 굳어버린 몸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작은 몸 안에서 그녀들은 커다랗게 자랐고 누구보다 큰 사람으로 성장했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려고 해요.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고 여성장애인 단체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퇴원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려고요!”

앞으로도 많은 이들을 만나고 자유롭게 살 거라고 전하는 은정 씨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몸이 그녀를 구속하지는 못할 거란 확신을 심어주었다.

“근육병을 앓고 있다고 해서 절망하지 마세요! 호흡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으면 호흡기를 다는 시기도 늦출 수 있으니 위축되지 말고 언제나 신나게, 재미있게 살았으면 해요. 다들 힘내세요!”

마지막으로 자신들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말을 전하는 그녀들은 웃음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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