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차 동시에 전문의 시험…전공의 절반 약 한달 공백, 남은 인력 업무 가중
대형병원들, 문케어로 환자쏠림 더해졌고 전공의법도 가로놓여 삼중고 직면

[의학신문·일간보사=정윤식 기자] 내과 수련과정이 3년제로 바뀌고 난 이후 첫 전문의 시험이 실시되는 내년 1월을 앞두고 올 연말 쯤 ‘전공의 공백 대란’이라고 표현할 만큼 수련병원들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모양새다.

예년처럼 4년차 레지던트만 전문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병원 현장을 잠시 떠나는 것이 아니라 3년차와 4년차 전공의들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기 때문이다.

특히 보장성 강화정책(문재인케어)으로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쏠림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 가운데 일시적이지만 내과 전공의 3·4년차가 한꺼번에 자리를비운다는 것은 수련병원들로서 에상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내과 전공의 수련과정 3년제 전환이 확정되면서부터 예상 됐던 문제지만 결국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전공의 공백에 대한 대비는 이뤄지고 있을까.

■ 전공의법, 환자쏠림현상, 내과 3년제 전환 첫 시험…발 구르는 수련병원들

2020년 1월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수련병원들이 겪게 될 전공의 3·4년차의 동시 이탈은 갈수록 의료 인력들의 업무량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 부채질을 하게 되는 이벤트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단순 계산으로 집계해도 평소보다 2배에 가까운 전공의 인력이 줄어드는 것인데 이들의 업무를 담당할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 A상급종합병원 내과 교수는 “3년차와 4년차 전공의들이 하던 업무가 차질 없이 유지되려면 기존인력들이 더 많은 일을 맡아야 한다”며 “내과 전공의 교육과정이 3년제로 바뀌고 난 후부터 예견된 일이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즉, 전공의법 시행으로 인해 전공의가 일하는 양과 시간이 줄어든 마당에 3·4년차 전공의의 업무를 저년차 전공의에게만 맡길 수도 없으며 교수진, 전임의가 분담하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그는 “예전에야 4년차 전공의가 자리를 비우면 저년차 전공의들이 이를 당연히 나눠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지 않냐”며 “한마디로 인력 공백을 희생과 직업윤리라는 명목 아래 해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걱정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정부의 별도 지원이 있지 않은 이상 전공의 공백은 오롯이 수련병원이 추가 재원을 투입해서라도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는 방향으로 귀결되나 이도 쉽지 않은 부분.

수도권 B대학병원의 한 감염내과 교수는 “갑자기 환자가 줄어들지 않는 이상 업무 공백이 생기는 것은 기정사실인 상황에서 남아 있는 인력의 의존도를 최대한 낮추면서 이를 커버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당장 준비할 수 있는 것은 교수진과 펠로우의 진료량을 미리 조절하고 당직 체계를 변경해 분과 상황에 따라 우선 조율하는 정도뿐이라는 것이 그의 한숨이다.

특히, 내과 전공의 3·4년차의 공백 발생은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백보 양보해도 주로 상급종합병원 위주로 환자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는게 더 큰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대한병원협회 주최로 최근 열린 ‘Korea Healthcare Congress 2019(이하 KHC 2019)’에 참석한 이진우 세브란스병원 진료부원장은 상급종병 환자쏠림현상을 심히 우려했다.

이진우 진료부원장은 “문재인케어 실시 이후 연일 상급종합병원들의 진료수익이나 진료비가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며 “경증환자조차 종합병원으로 몰려가 중증·경증 환자가 둘 다 늘어 의료 인력의 피로도는 증가 중”이라고 지적했다.

이 진료부원장은 또한 “전공의법 시행으로 진료 시간이 제한되고 입원전담전문의도 구하기 힘든데다가 내과 수련기간 3년 단축 및 전공의 휴가 등이 겹쳐 의료인력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수련병원과 전공의들만 어색해지는 분위기에 정부는 팔짱만?

전공의 3·4년차 공백을 두고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저년차 전공의들과 교수, 전임의 등에게 업무가 분담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내과 교육과정 3년제 탓만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나아가 대전협은 개별 병원별 대책 마련과는 별개로 관련 단체들이 전공의 공백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시급히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또한 전공의 공백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한 것 같다는 의견도 덧붙인 대전협이다.

대전협 이승우 회장은 “당장 다음 주에 대한내과학회 춘계학술대회가 부산에서 열리는데 보통 4년차 내과 전공의들은 전원 참석한다”며 “올해는 3년차 전공의들도 4년차와 똑같이 참석할 예정인데 협조가 잘 안되는 일부병원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길어야 2~3일인 학술대회 기간조차도 3·4년차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우는 것에 수련병원들이 불안해한다는 것은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얼마나 큰 혼란이 벌어질지 예고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승우 회장은 “전공의 공백이 발생했을 때 이를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저년차 전공의나 남아 있는 인력들에서 찾아서는 안된다”며 “윤리와 희생을 말하기에는 사회가 달라지고 바뀌었는데 병원 차원의 재원을 투입해 부족하면 정부에 합당한 요구를 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전공의와 수련병원만 서로 싸우는 구조가 되는 것은 정부의 탓이 크다는 비판을 이어간 이승우 회장이다.

이 회장은 “정부가 수련병원의 요구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어줬다면 병원이 인력 탓만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는 전공의들의 공백은 정부에 대항해 파업을 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계가 알아서 하라고 떠넘기면 안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일선 내과 전공의들도 전문의 시험으로 인한 업무공백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느껴야 할 때”라며 “대전협 차원에서 인식도 설문조사를 실시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 전공의 없어도 병원 운영 차질 없는 시스템 큰 틀에서 마련돼야

이와 관련 내과학회는 최초 내과 수련과정 3년제 전환 당시 학회 차원에서 정부에 대비책 마련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예를 들어 미국처럼 3월에 전공의 과정을 끝내면 7월~8월 사이에 시험을 보게 하고 그 사이에 전문의 가면허를 부여하는 방식 등을 우리 내 여건에 맞게 변형하는 것이 대안이 될수도 있었다는 것.

엄중식 대한내과학회 수련이사는 “내과 분과전문의 제도와 같은 형태로도 해보자고 건의했으나 진행이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특히 엄 이사는 내과학회가 내과 수련교과과정을 개정하면서 3·4년차는 주로 외래환자와 고도화된 술기를 배우는 과정으로 규정하고 입원환자 진료가 메인이 돼서는 안된다고 결정했는데, 3·4년차 공백이 입원환자 진료 영역에서 생긴다면 고시 자체를 어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즉, 궁극적으로 병원의 형태는 전공의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며 수련과 관련해 일부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운다 한들 주된 진료의 축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엄중식 이사는 의료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인한 상급종합병원 환자쏠림 현상과 진료전달시스템이 미정비 된 상태에서 내과 전공의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엄 이사는 “입원전담전문의가 정착되기 이전 단계에 전임의나 주니어 교수들이 진료 공백을 일정부분 흡수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져도 안되는 상황”이라며 “병원들이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나 기본 조건들을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하루 빨리 진료전달시스템이 정비가 안되면 전공의 수련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며 “꼭 전공의 수련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형태를 유발한 것은 정책적으로 실패”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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