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며칠 전 모임에서 딸의 결혼상대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지인(知人)들에게 다 부탁했을 터인데 사교성이 부족한 필자에게까지 부탁했으니 대단히 심각한 것 같다. ‘잘되면 옷 한 벌, 안되면 뺨 맞는다’라는 말을 생각하며 주위에 알아보았다. 60~70대의 부모들이 아들, 딸의 결혼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계기로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자녀들이 결혼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거나 결혼을 안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사람도 많았다.

필자가 어렸을 때 자주 듣던 말 중에 “처녀가 시집을 가지 않겠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라는 것이 있다. 아마도 그런 말을 했음직한 여성 대부분이 결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성장하는 과정에서 시집살이가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희생하는 것을 보거나, 올케를 통해 시집살이가 힘들다는 것을 익히 알았기에 그런 고생을 할 바에는 아예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직도 제사나 명절에 가부장적 문화가 남아있어 주부를 힘들게 하고 있지만 가정에 따라서는 간소화하기도 하고, 아예 없애려는 집안도 있다. 오히려 이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챙기고 돕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미혼여성의 28.8%만이 결혼에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다. 10명 중 7명 정도가 ‘결혼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고 한다. 그 영향 탓인지 작년에 처음으로 결혼하지 않고, 미혼인 상태로 가정을 꾸려나가는 미혼여성 가구주가 140만 가구를 넘어섰다. 10년 전인 2008년에 비해 약 48%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그럼 여성들은 왜 결혼이 아닌 미혼을 선택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수없이 많겠지만 자아실현의 기회를 잃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결혼을 하게 되면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다. 과거와 비교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가사(家事)와 자녀양육의 책임은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다. 현행 근로제도는 여성 근로자가 임신, 출산, 자녀양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육아휴직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용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성들의 경력단절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은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합의가 필요한 복잡한 문제이며, 부부가 가사와 육아를 공동으로 책임지는 문화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사회를 헬(hell)조선이라고 하여 지옥에 비유한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고달프고 힘들다는 것이리라. 20대 중에는 “안 낳아서 망하는 게 아니라, 망할 세상이니까 (자녀를) 안 낳아” “헬조선에서 겪는 고통을 자식에 대물림하기 싫어” “힘든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도 부모로서 죄 짓는 것” 이라는 말을 한다(시사저널, 2018.3.14.).

이처럼 ‘힘든’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층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인은 ‘최악의 청년실업’ ‘치솟는 전세가격’ 등의 말로 지나치게 불안감을 조성하기보다는 결혼이 가능할 수 있는 정책마련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기업의 CEO는 직원들이 출산과 자녀양육으로 눈치보지 않도록 직장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서야 한다. 방송 제작자라면 남성과 여성이 함께하는 공동육아의 가치를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적어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도록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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