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
고려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나는 경제관념이 없다는 말을 아내로부터 자주 듣곤 한다. ‘돈은 샘물 같아서 퍼서 써야 자꾸 생겨난다.’는 어쩌면 궤변적이기도 하고, 다소 황당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이런 사고였다 보니 솔직히 그동안 내 연봉이 정확히 얼마인지, 한 해에 세금은 얼마나 내는지, 건강보험료는 얼마나 내는지 등에 대해 세세하게 알지 못했다. 그러다 정년퇴임 할 시기가 다가온 요즘 들어 주변 사람들과 노후문제, 특히 은퇴 후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종종 생기곤 한다. 그럼에도 ‘연금을 받아서 생활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지금처럼 그냥 저냥 살면 되지 뭔 특별한 계획?”이라며, 남의 이야기를 특별히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아내로부터 돈 씀씀이에 대한 여러 얘기와 핀잔을 듣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 중 정년퇴임을 하면 우선 건강보험이 당장 ‘직장’에서 ‘지역’으로 편입되어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는 얘기도 있었다. 연금도 수입이고, 자동차와 집이 있으면 보험료가 큰 부담이라고 한다. 사실 필자로서는 평소 은퇴 후 생계(?)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건강보험도 ‘수입이 있는 자식들의 피부양자로 들어가면 될 것 아닌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연금이 무슨 수입’이냐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그래서 정년퇴임을 해도 자식들 다 키워 출가시켰겠다. 특별히 돈 더 들어갈 일도 없을 것 같기에 ‘이제 슬슬 놀면서 평소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이나 하면서 [내 인생의 전성기]를 누려보자’는 식 이었다. 그런데 막상 정년이 다가오고, 주변의 얘기를 듣다보면 조금씩 불안해 지고, 막연히 이상만 키워왔던 내 자신이 초라하단 생각이 들곤 한다.

‘궁하면 변한다.’고 할까. 비슷한 시기에 은퇴하는 동료 교수가 퇴임 후 개업을 한다기에 ‘당신 개업하면 거기 나 취직 좀 시켜 줘, 월급은 조금만 줘도 되고, 직장건강보험 자격이라도 얻으면 그게 어디야’ 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런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내는 보험료는 얼마이고 은퇴하면 내야 할 몫은 도대체 얼마인지가 궁금해져서 자료를 찾다보니 결론이 이상한 곳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국민건강보험 공단 직원이 2018년 6월 30일 기준으로 약 15,000명이고, 평균 연봉은 6,200만원 이라고 되어 있다. 심사평가원도 직원이 3,000명에 평균 연봉이 6,300만원이라니 이들의 인건비를 합치면 연간 1조원이 훌쩍 넘어간다. 5,000만 국민 전체가 쓰기 위해 거둔 보험료 약 60 조 원 중 1/60 정도가 18,000명(전 국민의 약 1/2,800)의 인건비로 쓰이고 있다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의 가장 큰 특징인 저 부담, 저 급여 체계가 개선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선 국민건강보험 관리비용 중 인건비 부담을 대폭 낮추어야만 모든 국민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나라가 되고, 한국형 건강보장이 세계표준이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곳에 몸을 담거나 기획을 하고 있는 공무원들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국민들의 건강 보장을 위해 거둔 돈은 모두 국민을 위해 쓰고, 관리 비용이나 인건비는 모두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정상적 국가가 하는 일이 아닌가? 요즘 보니 정부는 누가 못살겠다고 소리 지르면 돈 보따리 잘 풀던데, 왜 전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는 보따리를 풀지 않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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