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6>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

[의학신문·일간보사] 역사 속의 악명 높은 독재자들을 모두 겪고 살아남은 한 투쟁가가 있었다. 그의 평생은 어그러진 시대의 사상과 잦은 혁명으로 인하여 불안과 혼란이 가득찬 시간이었다. 1905년 러시아 제정시대에 태어나 1975년에 타계한 쇼스타코비치는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세계 1·2차 대전을 비롯하여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탈린의 공포스러운 탄압을 모두 경험한 작곡가이다. 어릴 적 유럽이 1차 대전 중이었기에 그는 잦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어야했고, 몸이 많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신동이었던 그는 10킬로미터씩 걸어서 음악원에 다녔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16세부터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하였고, 그의 교향곡 1번이 성공리에 초연되면서 본격적으로 작곡가로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 호응

사건은 1936년에 터졌다. 쇼스타코비치가 1934년에 초연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은 너무나도 성공적이었던 나머지 177번이나 무대에 올려지게 된다. 여주인공인 카타티나라가 시아버지, 남편, 애인, 애인의 애인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스토리로 아주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 스토리에 대중들은 환호를 하였다.

그러나 1936년에 스탈린과 그의 간부들이 이 오페라를 관람하고 난 후 다음 날 정부기관의 잡지인 <프라우다>에는 “음악이 아닌 횡성수설 하는 음표 더미들”이라던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던 음악을 쓰려는 작곡가의 의도”라는 혹독한 비평이 쓰이게 된다. 오페라 공연은 바로 중지되었고 작곡가에게 열광하던 대중들은 정부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 4번의 초연을 앞두고 연주 며칠 전에 공연을 취소하게 된다.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던 와중에, 짙은 고독과 염세적인 분위기의 교향곡 4번도 스탈린 정부로부터 “타락한 부르주아 음악”이라고 평가되어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25년 후인 1961년, 스탈린의 죽음 후 무대에서 빛을 보게 된다.

당시 정부는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규제하고, 고전 혹은 낭만시대 스타일에 사회주의 사상이 가미된 음악만을 허용하였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이후 서방 국가의 자유로운 모던한 예술을 추구하는 ‘형식주의자’이자 ‘인민의 적’으로 낙인 찍힌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을 향한 정부의 공포스러운 탄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하였지만, 음악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서둘러 다음 교향곡을 완성한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는 1937년 11월에 교향곡 5번을 초연하게 된다. 교향곡 5번은 삐에로처럼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뒤틀린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의 1악장과 3악장은 아주 비극적인 분위기이지만, 4악장은 이 비극적인 분위기를 압도하는 승리를 표현하고 있으며, 작곡가는 작품을 통해 아무리 억압해도 꺼지지 않는 민족 혹은 개인의 의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교향곡 5번은 엄청나게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성공적인 초연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정부 관련 비평가들로부터도“스탈린 체제에 대한 더 밝은 미래의 비전을 들려주다”며 찬사를 받음과 동시에 쇼스타코비치를‘ 충실한 당의 음악가’로 복권시켜 주게 된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하여 독재 정부와 타협하며 살아간 기회주의자란 일부 비판은 이에서 비롯된다.

예술가로서 자의식·사상 포기하지 않아

그러나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에 의하면 교향곡 5번을 소련 공산당이 찬양한 것은 ‘블랙 코미디’였다고 한다. 스탈린 체제를 찬양하는 것은 애초 작곡가의 의도에는 없었다. 오히려 그는 정부로부터 탄압받는 자신의 삶에 과감하게 맞서면서 건전하고도 균형 잡힌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저명한 러시아계 지휘자인 게르기예프는 이렇게 말한다“. 스탈린은 절대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요 폭군이었다. 하지만 스탈린이 억누를수록 쇼스타코비치는 더욱, 더더욱 강해졌다. 스탈린의 압제는 이런 의미에서 쇼스타코비치의 모든 음악에 흔적을 남긴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자의식과 사상을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극복하며 살아남았던 그의 음악에서 우리는 고뇌와 갈등의, 순응과 저항의 힘겨운 내적 싸움을 느낄 수 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제자이며, 유능한 첼리스트인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는 음악의 전사들일세. 어떠한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인간을 옹호해야 하는 전사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