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필수 예방접종 항목 명시하는 방안 추진
위반시 벌금 5000만원…의료계, ‘감염병 대응책임 떠넘기는 처사’ 반발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정부가 감염병 대응 및 확산 방지를 위해 그동안 사문화돼있던 의료기관 종사자 예방접종 의무화 방안을 꺼내들었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국가가 감염병 대응을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의료계에 규제를 가중해 책임을 떠넘기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24일 질병관리본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필수 예방접종 항목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개정, 의료기관 종사자가 의무적으로 접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의료기관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 예방접종 등의 감염병 예방조치를 하도록 의무사항을 제시하고 있지만, 세부지침이 없다”면서 항목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시행규칙 개정 의향이 있음을 내비쳤다.

질병관리본부가 제시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살펴보면 법 제24조에 ‘사업주는 사업을 할 때 건강장해를 예방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있으며, 병원체로 인한 건강장해도 예방조치가 필요한 항목에 포함돼있다.

법 24조에 따라 세부적으로 시행해야 할 조치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정리돼있다. 이 가운데 시행규칙 제594조에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혈액매개 감염병, 공기매개 감염병, 곤충 및 동물매개 감염병(이하 "감염병"이라 한다)을 예방하기 위해 취해야 할 조치’가 나열돼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예방접종도 포함된다. 특히 공기매개 감염의 경우 ‘의학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예방접종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현재까지 시행규칙 속에는 ‘어떠한 질환에 대한, 어떠한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지는’ 규정돼있지 않다. 이로 인해 아직까지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 현재까지 사문화돼있는 상황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중 일부. 사업자에 대해 종사자 예방접종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질병관리본부 또한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이에 최근에 사회에서 이슈로 번지기 시작한 홍역이 1) 해외 유입 감염이면서 2) 원내 혹은 지역사회에서 2차 감염이 진행되고 있는 점을 고려, 의료기관 종사자에게 예방접종을 실효성 있게 의무화시켜 2차 감염의 주요 통로를 차단하자는 것이 질병관리본부의 전략이다.

법 소관은 고용노동부가 담당하고 있으므로, 질병관리본부는 고용노동부와 협의해 시행규칙 개정을 끌어내겠다는 방침이다.

‘왜 우리가 무너진 방역 체계의 원흉이 되어야 하는가’

관련 내용을 전해 들은 의료계, 특히 병원계에서는 반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모든 종사자에게 예방접종을 시행하려면 적게는 몇 천만원,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억 단위의 금액이 투입돼야 한다.

그렇다고 앞으로 의료기관에 취직하는 종사자들에게 ‘모든 예방접종을 맞고 오라’고 강요할 수 없다. 현행 노동법에서는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취업에 불이익이 가면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으며, 예방접종 유무에 따라 취업이 갈리는 상황 또한 위법성을 띌 수 있다.

결국 예방접종 비용은 사업자가 온전히 내야 하는데, 만약 지키지 않게 되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병원 관계자는 “정부가 검역 라인이 뚫린 책임을 의료기관에게 전가하고 있다”면서 “하다못해 의료기관 종사자에게 예방접종을 의무화하려면 지원책이라도 내놔야 하는데 의무만을 부과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규제 창출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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