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성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한 환자가 격앙되어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 찾아왔을 것이다. 1년 전 그 환자를 입원시키고 진료했던 의사로서 그 해 마지막 날 예약 없이 찾아온 환자를, 아마 보기에도 불안정했을 그 환자를, 돌려보낼 방법은 없었을 듯하다. 이미 진료시간은 지난데다 가족도 동행하지 않고 너무 불안정한 환자에게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설득하려 노력했을 것으로 보인다. 환자는 자신의 병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며, 1년 전 입원시킨 것에 대해, 양극성장애라고 진단한 것에 대해, 그래서 사회적인 낙인이 찍혔다고, 그리고 그 이유가 의사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의사에게 화가 났거나 또는 망상에 사로잡혀 의사가 자신을 해치려고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증상이 이미 심해져 아무도 설득할 수 없었을 단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면 누구라도 경험했을 장면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환자가 칼을 꺼내 들었고 한해 마지막 날 선량한 의사가 살해당했다.

정신과 의사는 이런 상황을 항상 걱정한다. 그래서 나의 진료실에는 비상벨이 있고 우리팀에도 항상 조심하라고 이른다. 전공의도 그렇고 간호사도 그렇고 간호보조원도 그렇다. 의료진 누구라도 위험한 일을 당할 가능성은 항상 있어서 항상 안전을 말한다.

그런데 막상 방법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안전할까. 비상벨과 안쪽에서는 잠글 수 없는 진료실 문 또 문을 등지고 환자 면담하기, 가까운 청원경찰 위치 등 물리적인 사항들을 체크하면 나아질까.

하지만 돌아보면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병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치료를 받지 않으면 타인에게도 위험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즉 정신과 질환은 치료 접근이 쉬워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현실은 이를 어렵게 한다. 영화에서 정신과 병동을 곰팡이 핀 30년대의 감옥처럼 묘사해 대부분이 가보지 않은 정신과 병동에 혐오감을 유발시킨다. 이처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치료받는 사람들까지 잘못된 편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은 혐오범죄와 같은 일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정신질환자의 입원 절차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정신과 입원을 치료의 필수적 조건이 아니라 감금에 해당하는 인신 구속이며, 인권에 반하는 비인도적 반인권적 행위라고 말하는 차별도 없어야 한다. 심장병이 심할 때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것처럼 정신질환으로 인한 입원도 치료를 위한 방편으로 인식돼야한다는 의미다.

중환자실에 입원시키는데 신중하지 않은 의사가 있을까. 이제 입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은 의사가 하지만 입원 결정은 의사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속하게 입원과 치료해야 하는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사법입원제도가 필요해 보인다. 물론 시군구청장에 의한 입원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이는 정신과 의사와 환자를 모두 속 터지게 한다. 한 가족과 의사가 입원을 강제하는 제도가 아니라, 국가가 치료를 책임지는 절차로 바뀌어야 한다.

병은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그리고 개인이나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병이 많은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나의 이웃이 위험하면 나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쉽게 입원하고 쉽게 퇴원하며 누구에게라도 치료를 권할 수 있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닌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인이 된 임 교수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일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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