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가 새해 초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고(故) 임세원 교수(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료 중 피살사건은 자신의 고객인 정신질환자로부터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끔직한 사건이어서 일반국민들은 물론 의료계에 강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이정윤 편집부국장

이번 사건은 충분히 예고된 것이었다.

의료진에 대한 폭행으로 신고된 건수가 890건에 달하고 특히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94%가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재작년 통계가 그 방증이다.

이번 사건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폭행.살인 등 생명존중의 충돌도 엿보인다.

정부나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자들이 ‘잠재적 흉기’로 각인되는 데 경계를 드러내고 있다.

공감한다.

하지만 그 공감은 의료현장에서 실재하고 있는 생명위협에 대한 안전장치가 확보될 때 공명한다.

고 임세원 교수의 유가족도 “임 교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 안전과 모든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이해와 치료에 전념한 고인의 뜻으로 이해된다.

고인의 직업적 책임과 숭고한 히포크라테스 정신이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걱정을 남겼지만 임 교수의 죽음은 ‘안전한 진료’에 대한 고민을 우리 사회로 불러냈다.

우리나라의 진료실은 안전한가? 늦었지만 그 고민을 이제 시작할 때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의 안전은 한마디로 무방비다.

공격적이고 폭발적 성향이 내재된 환자들이 급작스럽게 폭발하는데 비상벨이 무슨 소용인가.

환자는 충분한 설명을 원하는데 우리 진료수가는 환자를 진료실 밖으로 내몰고 있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정부는 벼락치기로 몇 가지 대안을 내놓았다.

진료실내 후문 마련, 비상벨 설치, 보안요원 배치 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아가 진료실 출입구에 금속탐지기 같은 감시장치 설치도 제안된다.

워낙 급한 상황이라 이해는 되지만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내친김에 응급실 등 진료실 범위를 좀 넓히면 진료실 안전을 위해 손 봐야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야간이나 심야에 응급실에 들어오는 주취환자들의 난동은 이제 뉴스도 아니며, 동네의원에서도 진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나 보호자들의 폭력에 의료인들은 벙어리 냉가슴이다.

진료실 폭력에 대처한다고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강화했으나 ‘반의사 불처벌’ 규정으로 현장에선 쓸모가 없다.

동네 입소문에 예민한 동네 의사나 간호사들이 얻어 맞고도 합의 없이 버티라는 것은 그 동네를 떠나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고 임세원 교수의 진료실 피살로 청와대 청원이 일어나고 의료계 등 각계의 성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고인은 ‘진료실 안전’을 우리 사회로 불러냈다. 의사가 안전하지 않으면 환자도 안전할수 없다.

이제 정부가, 사회가, 의료계가 항구적인 대책에 대답할 때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