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준
CM병원 내과·시인·수필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성공하기 위해서는 타이밍과 능력의 우열보다 사람의 조화가 더 중요하다. 서로서로 마음이 일치되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달리 이르면 때를 잘 만나고 환경조건이 알맞아도 조직구성원 사이에 불화가 있으면 성공할 수 없다.”

맹자가『공손추』하편에 남긴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무슨 일인가를 달성하려고 할 때 하늘의 때를 얻고도 지리적 이점 없이는 성취 할 수 없다. 또한 지리적 이점을 얻고도 인화가 없으면 이 또한 성취 할 수 없다)’를 요즈음 말투로 바꾸어 본 표현이다.

천시는 날짜, 시간 등 사람이 어쩔 수 없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과 밤과 낮, 추위와 더위, 바람 등의 하늘이 자아내는 현상이며 조건이다. 더 넓게는 사람이 알 수 없는 하늘의 신령한 조화도 포함된다. 지리는 지형의 험함 등의 지리적 조건을 가리키고 인화는 사람 마음 화합을 일컬어 모든 사람들의 바람과 쏠림 또는 비전이다.

천시를 잘 헤아리고, 지리를 잘 살펴 그것에 맞게 도리를 세우면 일단 비전 달성의 토양은 다진 셈이다. 여기에 인화를 보태야만 목표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왜냐하면 천시와 지리의 부족을 벌충하여 온전한 영향력을 끌어내는 게 바로 인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고대의 현자들은 하늘의 때와 지리에 인화가 넉넉히 채워진 다음에야 비로소 행동을 했기에 큰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한다.
『사피엔스』와『호모데우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가 호모사피엔스에게 던지는 제언에 따르면 천시와 지리는 별로인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철학과 종교, 과학 모두 시간이 다 돼간다.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인생의 의미를 두고 논쟁해왔다. 그러나 이 논쟁을 무한정 계속할 수는 없다. 다가오는 생태학적 위기, 커져가는 대량 살상 무기의 위협, 현상 파괴적인 신기술의 부상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하라리의 말대로 모든 분야가 예외 없이 천시와 지리가 달리 여유롭지 않다. 지나친 전문과 분과로 자기 성역에만 몰두하여 전문용어와 은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직역일수록, 자기들끼리만 전문은어를 쓰면서 전문용어라고 우기는 직역일수록 더 여유가 없다. 스스로 성역이라 믿고 몰두하는 이들의 성곽 안팎의 천시와 지리는 그 곳을 성역이 아니라 비루한 영역으로만 표시해둘 기세로 등등하고 있다. 이제 여유를 이야기해야 한다. 전문은어가 아니라 일상용어로 일상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화가 불화보다 승필해야 한다. 그러나 흔히 소통, 배려 그리고 독한 양보 등을 제시하지만 대개는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허황한 수사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범인(凡人)은 어떻게 하여야 그런 여유를 허락받을 수 있을까. 중국 진나라의 학자이며 시인인 곽박이 절친인 온교에게 보낸 시에서 그 해답의 말미를 구해본다.

“사람들은 말한다/ 소나무, 대나무는 숲을 이루어 산다고// 나도 그대와, 함께 냄새 맡고 맛보고/ 다른 이끼들이 같은 멧부리에 모여 살 듯// 말을 잊은 대화로 깊은 뜻을 이해하고/ 담박한 사귐으로 참 우정을 이루리// 뇌동하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리며/ 오직 나는 그대와 더불어 살아가리// 그대의 정신은 내 마음과 부합되고/ 내 생각은 그대의 심정과 하나이니// 우리 서로 손잡고 가슴을 활짝 열면/ 속세의 더럽혀진 티끌이 무슨 대단한 일인가”

이 시는 첫째 줄 ‘인역유언 송죽유림/급이취미 이태동잠(人亦有言 松竹有林/及爾臭味 異苔同岑)’의 끝 네 글자 ‘이태동잠(異苔同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다를 이, 이끼 태, 같을 동, 봉우리 잠을 직역하면 ‘서로 다른 이끼들이 같은 멧부리에 산다’로 의역하여 ‘가는 길은 다르나 목표는 같다’라고 풀이한다. 두 글자로 더 줄인 ‘태잠(苔岑)’은 ‘뜻과 생각을 같이 하는 친구’를 일컫는다. 『천자를 읽어 천하를 알다: 독천자 지천하』는 ‘이태동잠’을 퍽 마뜩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끼는 음습한 곳을 좋아하는 하등식물에 불과하지만 종류가 다양하고 생태적 기능과 적응력도 뛰어나다, 뭉쳐 있는 이끼의 나지막한 자태는 화려하진 않아도 서로 감싸주며 여타의 터전과 안식처가 되어주는 포근함은 모성애를 연상시킨다.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른 때는 ‘같음’을 먼저 ‘다름’을 나중에 찾는 것이 상호 이익의 해결책이다. 관점의 차이를 극복하고 본질적 사안에 화합함으로써 상생의 대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친구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따로 있지 않다. 과정과 노선이 달라도 궁극적인 지향점이 같다면 애증이 엇갈려도 뜻을 함께 하는 벗이 될 수 있다.”
<『천자를 읽어 천하를 알다: 독천자 지천하』, 공동저자 진세정>

자신을 거울에 비추기보다 사람에 비추어 보라고 한다, 나에게 비추어 보고 남에게 비추어 보면서 다른 점, 같은 점을 비추고 보여주는 거울이 상대를 떠보고 평가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보다 훨씬 더 인화를 부추긴다. 단, 여기서 반드시 짚을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인화의 인(人), 사람이다. 사람 이야기를 하면 사설이 자칫 길어질까 저어하여 ‘천시, 지리, 인화’를 영문번역 한 어느 한 분의 견해를 빌려온다. 그는 인화를 ‘with the right people’로 번역하고 있다. ‘Right’는 ‘옳은, 정당한, 바른, 정확한’ 등의 뜻이다. 어디 이런 사람이 흔할까.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애쓰고 있으면 ‘right people’일게다. ‘인화’는 그저 이 사람 저 사람이 모여 한 곳에 머물거나 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럴만한 사람들이 의가 좋고 화목해야 성곽이 견고해지고 바람도 뚜렷해진다. 때와 곳이 불확실하고 거칠수록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 엉구어내는 구순함의 꼭짓점은 어김없이 ‘태잠’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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