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업종 유연근무제 도입 인정해야

병원계, 11시간 연속 휴게시간 부여 의무에 큰 부담
의료인력수급체계 인정 선행-정부 인건비 지원 필요

정영호
대한중소병원협회장
한림병원 병원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이 2018년 2월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고, 같은 해 7월 1일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저녁이 있는 삶’과 ‘워라벨’을 구상하도록 하는 주 52시간 근무제도의 전격적인 시행은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2018년 노동계와 산업계에서는 모두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계는 주52시간의 고수로 일과 삶의 균형 있는 생활을 위해 양보가 없고, 산업계는 급작스런 제도시행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맞서고 있는 양상이다.

◇2021년 모든 사업장까지 확대= 개정 근로기준법은 1주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하고, 주당 최대 근로시간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 특례업종을 26개 업종에서 보건업을 비롯하여 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 운송관련 서비스업의 5개 업종으로 축소하는 내용이다. 제도시행의 일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적용시기를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하여 2021년에는 모든 사업장에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근로시간 제한 특례업종으로 분류된 5개 업종의 경우 주 52시간 초과근로를 가능토록 하고 있으나, 이를 위해서는 사업주와 근로자단체 간의 서면합의가 있어야만 하고, 이 경우 휴식시간을 11시간 이상 의무 부여토록 하고 있다. 병원계는 11시간 연속휴게시간 부여 의무에 상당한 부담과 우려를 지적하고 있다.

병원은 입원실 운영으로 인하여 24시간 문을 열어 둘 수밖에 없고, 초과근로를 제한함으로 인한 불가피한 인력의 증원과 인건비 부담이 병원 경영과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기에 우려하는 바가 크다.

매년 물가 인상률에도 못 미치는 수가 인상률을 감안한다면 최저임금의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시간제의 시행은 병원계에는 인공호흡기조차도 달기 어려운 궁지로 몰리는 형국인 것이다. 의료업의 특성상 발생 가능한 사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하다고 보인다.

◇의료서비스 질 하락 유도 우려= 병원이 주 52시간 초과근로를 위해서는 노사합의를 전제로 하고, 11시간 이상 연속 휴게시간을 의무 부여토록 법 제59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노조에서는 거의 합의를 거부하고 있고, 병원계의 실태조사 결과 약 20%정도가 노사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되었고, 80% 이상 대부분의 병원은 서면합의가 불발되어, 병원 경영의 입장에서는 주 52시간 준수를 위해 인력을 추가 증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의료업의 특수성을 고려해보면, 전문직종인 의사, 간호사, 약사 등의 인력을 일시에 채용할 만큼 숙련된 인적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지도 않은 보건의료인력수급 상황에서는 병원 운영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며, 이는 곧 의료서비스의 질 하락을 유도할 것으로 우려된다.

병원의 경우 상시 발생할 수 있는 응급 및 중증환자 내원 시나 재난 등의 응급상황으로 환자 발생 시 이를 해결하고 나면 이후 휴게시간 부여로 인해 연속적인 진료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게 된다.

또한 On Call 대기근무 의료 인력을 운용해야만 한다. 수술실이나, 혈관조영실, 신장센터, 장기이식센터, 내시경실 등을 응급으로 운영하는 병원의 경우 정상적인 근무시간 외에 환자 발생시 팀으로 묶여 있는 의사, 간호사 등과 이들 부서를 지원하기 위한 임상병리 및 영상의학 등의 부서는 11시간 연속 휴게시간 부여 의무로 인해 다음날 정상적인 근무가 불가능해 지는 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과거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재난 및 이에 준하는 대량의 감염병 환자가 발생할 경우 국민안전을 위하여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 인력의 경우 일시적인 업무량 폭주 시 동 법률 적용이 불가하게 된다.

게다가 의료기관 소재지 지역 내에서 발생되는 화재사고, 건물붕괴 등 산업재해, 대형버스 사고가 발생될 경우 인근지역 병원에 환자를 분산 하더라도 해당병원에서는 관련분야 의료 인력이 특정기간 동안 집중적인 진료에 참여하는 사태는 빈번히 발생할 것이다. 법의 잣대에서 질병치료를 하려한다면 불가피한 상황들로 인해 환자는 결국 불편과 안전 사각으로 내몰려질 수밖에 없게 된다.

국회에서도 지난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주52시간 도입에 따라 전국 국립대병원에서 필요한 인력이 356명으로 소요예산도 12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병원계가 고스란히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을 확인해 준 바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자 중심의 근로환경 조성, 이에 따른 고용률 증가 목표의 정부 주도 정책추진에 있어서는 상식과 원칙에 입각한 사회적 합의를 통한 자연스러운 추진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급작스러운 추진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병원계 특수성·전문성 감안해야= 해결 방법은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일들이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한 경우가 있다. 위에서 예를 든 응급실 응급환자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연장근로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경우에 놓여있는 의료현장 대해서는 배려가 없는 법 개정이기도 한 것이다.

직종이나 부서에 따라 불가피한 사례가 분명히 존재하는 데에 대해서는 예외적용이 필요한 것이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병원계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감안하여 적용예외가 반드시 필요하다. 연속 휴게시간 11시간 적용의 예외 뿐 아니라, 그 적용기간의 기준에 있어서도 6개월 내지 1년의 충분한 기간 내에서 노사 자율에 맡겨 합리적이고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유연근무 도입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점진적 확대로 정책이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인력수급체계의 인정을 선행해야 한다.

인력 증원이 불가피한 상황에 있는 병원계에 정부 차원의 인건비 지원이 필요하다. 응급환자 및 중증환자를 돌보는 병원에 근무 중인 근로자에 대한 인건비 지원을 통해 제도의 안착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배려와 노력이 절실하다고 본다.

충분한 대화와 중지를 모으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책의 추진과 안착을 위한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고, 근로자의 저녁이 있는 삶과 워라벨을 위해서는 분명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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