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4>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

독일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Robert Schumann 1810-1856)

[의학신문·일간보사=의학신문] 19세기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839년에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스승인 프리드리히 비크 교수가 비크교수의 딸 클라라 비크를 놓고 벌인 법적 소송이지요. 1835년에 슈만은 비크 교수와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면서 자신보다 9살 어린 16세의 클라라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클라라는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어린 신동 피아니스트였고 슈만은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작곡가였습니다. 비크는 제자인 슈만의 음악적 재능에 대하여 누구보다 확신이 있었지만, 자신의 딸을 벌이가 변변치 않은 음악인에게는 줄 수 없다고 판단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딸의 결혼을 반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두 연인은 맹렬히 반대하는 아버지의 동의 없이 결혼을 하기 위해 법정에 혼인 허가 소송을 제기하게 되지요.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한 비크 교수의 비겁하고 치밀한 전략(법정 기록에 의하면 비크는 슈만이 순수한 미성년자를 유혹한 부도덕자, 무능력한 알코올 중독자란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리스트와 멘델스존이 슈만을 위해 증언을 했다고 합니다)에도 불구하고, 소송이 시작된 지 대략 1년 2개월 만에 법정은 슈만과 클라라의 손을 들어주게 되고, 그들은 드디어 사랑의 언약을 맺게 됩니다.

법학공부 포기하고 음악가 길 선택

슈만은 어릴 적부터 음악과 문학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독일 최고의 명문대 법학과에 진학을 하는 등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만, 끓어오르는 음악에 대한 열망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한 그는 법학공부를 포기하고 음악가의 길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는 지나친 의욕에 앞서 약한 손가락을 강화시키려고 무리한 연습을 하다 결국 손가락을 영구적으로 다쳐 더 이상 연주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슈만은 글쓰기와 작곡에 그의 열정을 쏟게 되고, 1834년에 창간된 “음악신보 Neue Zeitschrift für Musik”의 편집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음악평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의 작품번호 1번에서 23번까지는 모두 피아노 작품으로써, 아마도 자신이 이루지 못한 피아니스트의 꿈을 작품들을 통해 이루어 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음악적 원천은 아내 클라라에 사랑으로, 그의 작품들 대부분에는 아내인 클라라에 대한 사랑 고백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판타지> 작품 17번입니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슈만과 클라라는 비크의 반대로 잠시 떨어져 있었는데, 그 시간 가운데 슈만이 느낀 고통과 고뇌를 1악장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슈만은 여러 작품에 아내 클라라를 위한 주제([하행 다섯음의 모티브]- 이 곡에서는 라-솔-파-미-레)를 반영하곤 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이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한편 이 작품 3악장은 반전의 분위기로 “느슨하게, 평안함을 가지고” 연주하라고 표기가 되어있는데, 비크 교수와의 갈등이 해결된 시점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서로의 사랑에 대한 확신 가운데 평안과 안도를 느낀 작곡가의 마음이 전달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 나의 기쁨, 나의 고통 /
당신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 내가 날아다니는 천국 /
당신은 나의 무덤, 그 속으로 나는 영원히 내 근심을 묻었네 /
당신은 나의 안식, 나의 평화, 하늘이 내게 주신 사람 /
당신이 날 사랑함으로 내가 비로소 가치가 있고, 당신의 시선이 나를 맑게 하네 /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어올리니 당신은 나의 선한 영혼, 보다 나은 내 자신이네
- 슈만의 <헌정 Widmung>

이와 같이 한 여인을 그 누구보다 깊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통하여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 슈만이지만, 오랜 시간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정신질환으로 결국 세상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끝까지 그를 사랑하고 지지했던 아내 클라라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한 해의 마무리가 어느새 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인생은 희로애락의 결코 쉽지않은 드라마이지만, 우리에게는 이러한 롤러코스터를 함께 타고 있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새로운 소망으로 내일을, 또한 내년을 바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 이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고독 가운데 있다면,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내가 누군가에게 인생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사랑의 원동력이 되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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