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보건의료분야 노사정 공동선언' 행사에서 발표 중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의학신문·일간보사=정윤식 기자] 올해 초 ‘주 52시간 근로시간’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특례업종 중 하나로 남게 된 보건업. 당시 보건업이 제외된 이유는 인력난 심화와 불균형 등이 고려됐기 때문인데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업종이라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 합의’라는 단서 조항은 존재한다. 서면으로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하지 않으면 52시간을 지켜야 하나 합의 했을 경우에는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특례 적용 시 근로일 종료 후 다음 근로일 개시 전까지 근로자에게 연속해 11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제한도 존재한다.

당시 이를 받아들이는 노동계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만 해도 보도자료를 통해 ‘노동계를 배제한 채 여야 국회의원들끼리 근로기준법 개정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아직도 우리사회는 노동존중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즉, 병원 내 인력 충원과 함께 조직문화 개선을 함께 요구하고 있는 노동계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특례업종 자체의 폐지를 원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국립대병원의 경우, 노사 간 서면 합의 불발로 ‘울며 겨자 먹기’ 식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으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실제로 올해 국정감사에서 서울대학교병원은 자체 인력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과 준비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는 발언을 했다. 향후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유지가 미지수에 놓여있다는 것을 시인한 것.

국립대병원과 대형병원 조차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상황에서 중소병원계의 걱정과 우려는 더욱 태산 같았다. 휴게시간 11시간이라는 단서 때문이기도 하다.

대한중소병원협회 정영호 회장은 “의사, 약사, 간호사 할 것 없이 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특례제도를 허용해 준 것 같지만 명시된 휴게시간 11시간 규정으로 오히려 더 큰 문제를 겪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소병원은 진료 과장이 한두 명 밖에 없고 입원환자의 응급 상황이나 갑작스러운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누군가에게 이를 맡길 여건도 되지 않아 항상 근무를 해야 하는데 11시간 휴게시간 의무 때문에 전날 밤 근무한 의료진은 수술은커녕 진료 등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지적.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도 올해 국감장에 참석, 결국 인력이 핵심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국종 교수는 “대한민국 병원들의 인력 수준은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며 “주 52시간 근무제 등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려면 보건의료 현장에 어마어마한 인력이 필요하고 충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준법진료’를 선언해 각 병원 근무 의사들도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근무시간이 준수돼야 한다는 주장을 최근 펼쳤다.

‘주 52시간’이라는 근무시간을 두고 같은 의료계이지만 병원과는 셈법이 다소 다른 의협의 입장이 나온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부 개원가는 최저임금 인상 여파와 이번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평소 상대적으로 환자 수가 적은 평일을 정해 휴진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현 정부가 야심차게 도입한 주 52시간 근무제이지만 의료계는 인력부족 등의 문제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오히려 병원 경영 악화 및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갈등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다시 말해 문제점을 인식하고 필요성은 모두 인지하고 있는 듯하나 그 누구도 속 시원한 해결법을 제안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 ‘보건업 52시간’이다.

보건복지부도 현재로서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일률적으로 정하기보다는 의료사업장에서의 상호 해결을 통해 적절한 방안을 찾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혀 당분간 의료계와 병원계, 노동자들의 혼란과 우려는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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