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사회단체에 근무하다 보니 이런 저런 행사에 자주 참석 한다. 행사를 할 때면 내빈과 중요인사들을 중심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거의 매번 사진기사가(프로이든 아마추어이든)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힘차게 오른 팔을 들어 올리는 포즈를 요구한다.

명령(?)에 따라 손을 들고 파이팅을 외치지만 탐탁하지 않다. 파이팅은 영어로 ‘싸우다(fight)’는 의미인데 파이팅을 목청껏 외칠 때, 도대체 누구를 향하여 전의(戰意)를 불 태우자는 것인가. 누구를 쳐부수자는 것인가. 궁금하다. 나 자신과의 투쟁 아니면 누구? 이상하다. 특히 사회봉사를 주로 하는 단체의 행사에서도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외치는데 영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관행은 우리 일상생활에도 스며들어 있다. 자녀가 등교(登校)하거나, 가장이 일터로 나갈 때도 엄마나 아내가 “파이팅!”으로 격려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학교나 직장에서의 학급 친구? 직장 동료나 상사? 이들은 싸워서 물리칠 적이 아니라 협조하고 배려하여야 할 사람들 아닐까.

축구, 야구 등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 운동선수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싸우는 이유는 나의 주장이나 생각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또 그 반대로 상대방에게 결코 설득당하지 않겠다는 결의일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주장이나 생각이 나와 다를 지라도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때가 적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 윈윈(win-win)하는 것 아닐까. 사사건건 대립할 때 얼마나 피곤한가.

싸움을 하면 코피가 터지거나 얼굴에 멍이 들 정도로 얻어터질 수 있는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설령 다치지 않더라도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면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토론이나 대화에서 상대방을 압도하여 이기더라도 항상 후유증이 남게 마련이다.

싸움에는 반드시 승자(勝者)와 패자(敗者)가 있다. 이긴 자는 기쁠지 모르지만 진 자는 마음의 상처가 크다. 그러니 모든 것을 싸우는 것으로 구도를 잡지 말고, 타협과 대화의 구도로 가야한다.

온통 싸우자는 구호가 난무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이다. 병든 사회이다. 최근 “헬(hell) 조선”을 외치며 대한민국 사회를 지옥으로 희화화하는 것도 이런 사회 풍조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의 얼굴이 굳어 있다고 한다. 화가 잔뜩 난 표정이라고 한다. 필자도 오래 전 한국 사람들이 무서워 보인다고 아프리카 사람으로부터 들은 일이 있다. 싸우자는 구호가 다반사(茶飯事)니 얼굴이 굳고 처연해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파이팅을 외치는 관행은 만인의 만인을 향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과 같은 사회를 연상한다. 구성원 모두가 싸움을 다짐하며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니 얼마나 살벌한가.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 산다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요즘엔 두 손가락을 이용하여 ‘손하트’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파이팅’을 외치며 결의를 다짐하기 보다는 ‘손하트’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것이다. 포즈에 따라 표정도 부드럽고 환한 미소로 바뀔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도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명랑한 대한민국이 될 것 같은 희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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