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병원, ‘사람이 없다’ 하소연…개원 혹은 프리랜서 선호‧수도권 쏠림 현상이 원인

수술장면. 상기 이미지는 기사와 관련 없음.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최근 지방 일선 병원의 마취전문의 부족이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수도권 쏠림 현상과 통증클리닉 개원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데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어서 부족 사태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28일 병원계에 따르면 지방 주요 종합병원급 의료기관, 심지어는 상급종합병원까지 마취전문의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마취전문의가 부족해 수술 일정 잡기도 힘들다”면서 “70세가 넘은, 정년퇴임하신 분까지 모셔다가 마취를 담당케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마취과전문의 부족을 겪고 있는 경북 지역 종합병원에서도 전문의 부족의 심각함을 강조했다. 병원 관계자는 “한 마취전문의가 너무 많은 마취를 담당하게 되면 마취 적정성평가로 인해 적정성이 떨어지게 된다”면서 “적정성 관리를 위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마취전문의가 필요한데, 전국의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이 그만큼의 전문의를 필요로하니 당연히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마취전문의 부족은 지난 2000년대 초반에도 지적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마취과 전문의 배출을 늘리는 쪽으로 해결책을 세운 바 있다. 그로 인해 현재 마취과의 전공의 정원은 상당한 편이다. 매년 200명씩 전문의가 배출되고 있으며, 외과 계열 정원이 최근 20%가 감축될 때 마취과는 단지 10%만 감축됐을 뿐이다. 이 전문의들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대학교수 최고’는 옛말…‘의무는 많고 혜택은 적다’

앞서 말한 지방의 상급종합병원은 수련병원인데도 불구, 마취전문의 부족을 겪고 있다. 수련 받은 전공의들이 전부 수도권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방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은 마취과 전공의들이 수도권으로 쏠리는 현상은 예전부터 누차 지적돼왔다. 서울의 경우 프리랜서로 뛸 수 있을 만큼의 외과 계열 의원이 많은 만큼 일자리도 많으며, 소위 BIG 5라고 일컬어지는 초대형병원들이 마취과 스텝을 대거 모집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지방에서 수련받은 전공의들 중 상당수는 서울 출신이어서 지방 생활보다는 서울 생활이 친숙해 ‘다시 상경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여성 마취과 전문의 증가’도 지방 병원의 마취전문의 구인난을 심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 대학병원 마취과 교수는 “최근에 전문의를 취득하는 인원 중 절반은 여성”이라며 “지방 근무를 꺼리고 수도권으로 취직하려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는 결혼과 출산 등으로 경력이 단절돼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 대학병원들이 내놓을 수 있는 메리트, 즉 ‘교수직’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예전과는 확연히 차이난다. 지방 대학병원들은 ‘마취전문의 취직이 곧 대학교수 되는 길’이라며 전공의와 전문의 잡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실은 ‘쳇바퀴처럼 도는 마취 스케쥴 속에서 논문‧학위 준비까지 해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라는 인식이 젊은 마취전문의들 사이에 퍼져있다. 지방 대학병원의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체계와 시스템의 열악함도 마취전문의의 외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 많은 돈을 원하는 마취전문의들은 개업 혹은 프리랜서를 선호한다. 한 마취과 전문의는 “의료사고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진다는 리스크는 있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눈치 보면서 병원에서 일하고, 어렵게 SCI급 논문 쓰면 뭐하냐”면서 세태의 변화를 꼬집었다.

결국 의료전달체계의 문제, 해결은 ‘요원’

결국 마취전문의 부족의 문제는 ‘인력 공급의 불균형과 쏠림’으로 지적될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원인이 분석됐음에도 불구,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원내 마취전문의의 수가 곧 총 수술건수이고, 총 수술건수가 곧 마취전문의 수인데 전부다 수술은 BIG 5에서 하고, 개원가에서 진행되는 수술, 특히 단가가 높은 수술 또한 대부분 수도권에서 이뤄지니 지방에서 마취전문의 부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관계자 또한 이 점을 잘 알고 있지만, 뽀족한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해마다 전문의가 쏟아져도 부족한 곳은 항상 부족하다”면서 “의료전달체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 지방 소재 병원에 수가 가산을 하는 방법 등도 고려될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 과연 실행될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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