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김영주 기자]국내 제약업계의 정부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 도대체 우리나라 정부인지, 외국 정부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다. 제시하는 정책마다 자국 산업의 발전을 도외시한, 오히려 역차별 요소가 강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발표된 신약약가우대 개정안과 정부가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제네릭 약가인하에 대한 제약업계의 반응이다.

김영주 부국장

사실 국내 제약산업이 겉으로 보기에는 내수 시장을 탄탄하게 수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간 매출 1조를 넘어 2조를 향하는 기업이 있고, 1조 클럽에 3~4개 기업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도니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한 발자국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국내 제약기업 매출의 반을 훌쩍 넘는 몫이 다국적제약 오리지널 도입 제품 판매 분량이다. 국내 진출해 있는 외국 법인과 협업관계를 맺고 영업·마케팅을 대신해 주고 일정 마진을 챙기는 구조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따지면 국내 시장은 이미 다국적 오리지널에 상당부분 잠식돼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 년에 걸쳐 수조 원을 쏟아 부어 개발한 다수의 신약으로 중무장한 다국적제약을 국내 제약이 상대하기에는 버거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한미약품 등 몇몇 선각자적 기업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투자를 통해 글로벌 시장이 주목하는 신약후보물질을 개발, 계약금만 수백~수천억에 단계적 마일스톤까지 합치면 조 단위에 이르는 ‘대박’ 수준의 기술수출을 성사시키고 있는 것. 한미약품의 원맨쇼에서 점차 다수 기업으로 확대되며 혁신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이고 있다. 이에 고무된 정부는 제약산업을 국가 미래먹거리 산업으로 삼아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해 왔고, 혁신신약 약가우대방안은 이 같은 배경속에 지난 2016년 7월 도입됐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신약은 허가부터 약가산정, 그리고 심지어 인하요인 발생 시에도 그 시기를 늦춰주는 혜택이 주어지는, 가능성 있는 신약에 대해선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해 주는 것이다. 신약개발 의지를 북돋는 측면에서 이만한 제도가 없다는 평가속에 제약기업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그래서 이 제도의 상징성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기대가 무산됐다. 한미FTA의 재협상 결과물로 국내 제약산업이 또 다시 희생양이 됐다. 국내 진출해 있는 다국적제약업계의 코치를 받았음이 분명한 미국 측은 제도의 무력화에 나섰고, 예전 한미FTA 비준당시 제약산업을 희생양 삼았던 정부는 이번에도 미련 없이 제도의 유명무실화로 그들에 화답하며 국내 제약업계의 희망의 싹을 잘라버린 것.

그것도 모자라 정부가 최근 제네릭 가격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업계내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 제네릭은 국내 제약산업의 젖줄이다. 제네릭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신약개발도 가능했고, 자국 산업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제네릭 덕분이다. 발사르탄 원료에서의 방사성 물질 발견 문제가 의약품 품질문제로 번지더니 엉뚱하게도 제네릭에 불똥이 튀며 약가인하설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국내 제약업계는 정부 차원의 유일한 신약개발 지원 제도도 잃고, R&D투자의 원천인 제네릭 조차 위기에 빠져 있는 것. 결국 갈수록 미국 등 다국적제약사의 의도대로 국내 제약은 기력을 잃고 다국적 오리지널은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우리 정부에 도대체 어느나라 정부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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