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문화로 읽다<2>

[의학신문·일간보사] 우리는 이미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실제 공간이든 가상 공간이든 어디를 봐도 이미지로 차고 넘친다. 지구촌을 이루며 언어소통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편으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SNS도 글 중심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이미지 중심의 인스타그램으로 전환되고 있다. 하나의 이미지는 언어를 초월하는 소통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 싶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고대 로마의 플리니우스 Gaius Plinius Secundus Major(23~79)는 자신이 77년에 완성한 『박물지(Historia Naturalis)』 35권에 ‘그림의 기원’을 기록하였다. 기원전 600년 경 고대 그리스 코린토스 지역의 도공이었던 부타데스(Butades of Sicyon)의 딸이 날이 밝으면 전쟁터로 떠나게 될 연인을 잊지 않기 위해 그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등불을 밝혀 벽에 드리운 그림자를 따라 연인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이 전설에 따르면 그림은 연인의 분신으로,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과연 그럴까?

알타미라 벽화는 선사시대 그려져

1879년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에서 아마추어 고고학자 마르셀리노 산스 데 사우투올라(Don Marcelino Sanz de Sautuola)는 그의 8살 난 딸 마리아와 함께 우연히 오래전 멸종된 수많은 들소들이 그려져 있는 동굴벽화를 발견하였다. 선사시대 원시인들이 그렸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잘 그렸고,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1902년이 돼서야 그 그림들이 선사시대에 그려졌음이 고고학계에서 공인되었다. 세월이 흐른 뒤 피카소는 이 벽화를 보고 “알타미라 이후로 모든 것은 데카당스(퇴락)다”라고 말했다.

이후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에서 많은 동굴벽화가 발견되었다. 1940년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 지방에 위치한 베제르 계곡에서 라스코 동굴벽화가 발견되었고, 반세기가 지난 1994년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에서 쇼베 동굴벽화가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초기 벽화에 동물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선사시대 인류가 그림을 그린 이유가 생존과 직결된 수렵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굴에 살던 사람들이 그린 동물들과 실제로 사냥한 동물이 일치하지 않음이 밝혀졌다.

선사시대 동물그림보다 이전에 그려진 그림들이 여럿 발견되며 새로운 난제가 등장하였다. 그 그림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형태와 흩뿌려져있는 점들을 그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그렸다는 점이다. 기존의 학설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러한 난제를 풀기 위해 고고학과 인류학에 의존하던 선사시대 그림 연구가 점차 진화생물학과 인지과학 등의 연구결과를 참조하며 공동연구로 진행되었다.

먼저 뇌의 크기 변화에 주목하였다. 약 15만 년 전에 나타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와 같은 크기의 뇌를 가졌다. 그들이 약 3만 5천 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를 ‘창조력의 폭발’이라 한다. 인간과 유인원 뇌의 가장 큰 차이는 용량 차이와 더불어 상대적으로 큰 전두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두엽은 기억과 사고 같은 고등행동을 관장한다. 인류가 상대적으로 큰 뇌를 가지게 된 것은 불에 익힌 음식을 먹게 되면서부터다. 익힌 고기를 먹음으로서 많은 양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호모 사피엔스와 공생했다가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네안데르탈인들이 약 6만 5천 년 전에 이미 그림을 그린 것으로 밝혀졌다.

여하튼 그림의 기원을 살피는 데 관건은 그들이 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렸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깊은 동굴에서 그림을 그린 이들은 어둠 속에서 적응하기까지 잠시 시각을 상실한다. 그 상황에서 그들은 추상적인 패턴과 흩뿌려지는 점들을 보는 일종의 환각 상태를 경험한다. 그들과 우리의 뇌는 물리적으로 똑같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의 그림은 환각상태에서 본 것을 그림으로 남긴 것이다. 점차 그러한 환상을 자신들이 감정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던 것의 형태로 드러냈다. 바로 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동물들이었다. 그림 속 동물은 지역마다 달랐다. 환경의 영향이었다.

고대 인류는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

주목할 점은 사생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해서 자신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동물을 그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세 가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은 생각했다. 생각을 했기에 특정 동물을 보고 어떤 상상을 했을 것이다. 둘째, 그들은 관찰했다. 기억해서 그렸기에 그들은 각각의 동물을 세심히 관찰하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그림을 보며 그 동물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림 속 동물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기록하여, 그 생각을 공유하며 공동체 의식을 형성해 나갔다. 그림은 대략 6천 년 전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전까지 생각을 기록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인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인류문명사의 중대한 사건 중 하나다.

지금까지 동굴벽화에 대해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그림의 기원에 대한 플리니우스의 기록은 ‘부타데스의 딸이 최초의 화가였다’는 점만 빼면 그리 틀리지 않다. 그림의 기원이 기록이라는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기까지는 약 2천 년이 걸린 셈이다. 이 또한 그가 책에 기록하지 않았으면 확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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