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태
법무법인 세종 고문

[의학신문·일간보사] 며칠 전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여율을 9%에서 장기적으로 12~15%까지 상향조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대적 개혁안을 발표했다. 1988년에 도입한 기여율이 한 번도 조정되지 않았다.

필자가 연금보험국장을 맡고 있던 2001~02년에도 기여율 조정, 기여상한선 조정, 급여산식, 소득대체율 조정 등 개혁안이 논의되었지만 크게 변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에는 정치권, 근로자 등 가입자, 기업인 등 사용주, 현 근로세대, 퇴직세대, 차세대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현정부는 물론 누구라도 깊이 관여하려 들지 않는다. 시한폭탄을 수건돌리기식으로 미룬다.

국민연금은 국내외 연금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단순한 수리, 복지의 경제학이 아니었다. 선진 외국의 연금개혁 역사를 잠시 일별해본다.

1. 1884년 독일재상 비스마르크는 팽배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풍조를 퇴치하기 위해 ‘반공법’을 제정, 좌파들을 숙청(투옥 및 해외추방)하는 한편,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하여 근로자들을 달래는 채찍과 당근의 병용 정책을 도입하였다. 그리하여 독일 연금이 전세계 연금제도의 효시가 되었다.

2. 1929년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금과 연금기금을 많이 거두어 그 돈으로 국가가 직접 불황을 극복하려고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5년 ‘사회보장법’을 도입하였다. 일명 ‘OASDHI’라고 한다.

3.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처칠 영국수상은 국민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호소하는 한편, 베버리지로 하여금 종합복지정책을 마련토록 주문했다. 그 결과 유명한 ‘베버리지보고서’가 나왔고 NHS와 기초연금제도가 도입 시행되었다.

4. 1943년 대동아전쟁에 돌입한 일본은 전비 마련과 일본근로자 복지를 약속하며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했다.

5. 제1차 세계대전의 전비마련을 위해 독일은 쌓아두었던 연금기금을 소진하였다. 그 결과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 즉, 현세대가 낸 기여금으로 퇴직세대가 급여받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결론적으로, 보건복지부가 연금수리만을 바탕으로 연금기금의 소진시기를 늦추고 장기적으로 차세대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연금개혁을 시도하다가 발목이 잡혔다. 고령화시대에 대비한다는 논리의 추동력만으로 연금개혁을 시도하여 성공한 역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큰 역사적 상황에 직면해야만 연금개혁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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