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의사의 전문직 지위는 어렵고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습득하고, 이타심과 인격적 통합성(integrity)을 바탕으로 의술을 실천하며, 스스로 자율규제를 잘 수행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확보되었다. 그러기에 의학 전문직업성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통제(Social Control)라는 개념과 떼어 놓을 수 없다. 일반인으로 의과대학에 들어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전문직 의사가 되고, 연수교육과정을 통한 재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반드시 체화해야 하는 개념이다. 의사들은 사회적 통제방법으로 법이나 타율에 맡기는 것을 싫어하고, ‘동료평가’와 ‘자율점검’과 같은 자율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통제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사회적 통제방법으로 시행하고 있는 동료평가(peer review)는 집단적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의료전문가로서 전문 지식과 능력을 그가 속한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인정받는 방법이다. 의료계 스스로가 공공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지키기 위해 만든 장치이다. 평가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평가결과에 대한 판단과 조언이 유효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만약 동료 평가가 비효율적이고, 제대로 기능하지 않거나 부패한 과정을 거친다면 의료계가 요구하는 전문직으로서의 위상이 심각하게 약화될 것이다.

공정한 징계, 전문직 가치 높여

그러기에 동료 평가에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부분이 자율규제(징계행위)다. 자율규제 없는 동료 평가란 의례적인 사회적 행위가 될 수 있다. 공허한 약속 일 뿐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정의를 내리자면 전문직이 전문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그들이 자율규제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은 외부 규정이나 제재로 인한 압박감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전문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공정한 징계는 전문직 가치를 높여주고 선명한 힘을 부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다나사건(다나의원 의사가 대뇌 출혈로 심신미약자가 되어 진료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2011년부터 간호조무사인 부인이 불법진료를 하여 진료환자 중 97명이 C형 간염에 감염된 사건)을 계기로 동료평가를 통한 면허관리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아직 동료평가에 대한 인지적 지식이나 개념이 없던 때라 일부 의사들이 동료평가에 대해 정서적으로나 어감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결국 동료평가제를 ‘전문가평가제’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2016년 11월 21일부터 광주·울산·경기도 3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시범사업이기에 평가 대상을 ‘의사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 중대한 신체, 정신질환이 있는지, 사무장병원과 불법 의료생협 등 비의사가 의사를 교사 방조하여 행하는 불법행위를 하는지’에만 한정하여 실시하고 있다.

시범사업을 했지만 별다른 평가결과가 없다고 조급한 압박도 있었다. 전반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통찰력이 부족한 평가였다. 결과를 얻기에 극히 짧은 기간이었으며, 평가 대상이 제한적인 부분을 간과한 결과다. 또한 전문평가단을 시범사업으로 시행한다는 자체가 상당한 예방효과를 내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속단인 것이다. 동료평가의 방법으로 처음 도입된 ‘전문평가제’는 대한민국 의료계 최초의 자율규제기구 초기 모형이기에 시간을 가지고 개선 보완해 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 통제의 두 번째 유형은 자율점검(self-review)방법이다. 최근에 사회적 통제의 방법으로 의학 전문직업성 문헌에서 주목받는 주제가 되고 있다. 자율점검은 개인 스스로가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적 이익을 위해 스스로 점검하고 규제하는 방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단체 스스로 자율점검을 하도록 의사회원들에게 요구하기를 꺼려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껏해야 3년마다 면허신고를 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자율점검 항목을 만들고, 자율점검 후 보고받는 형국이다.

자율점검은 전문가집단의 몫

의사협회가 회원들에게 자율점검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협회지도부가 잘 이해하지 못 한 이유가 가장 크고, 다음으로 의학 전문직업성의 사회적 통제 성격에 대해 의사회원들의 인지적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자율점검은 동료 평가와 함께 전문가 집단이 가진 자율통제 방법인 것을 협회 지도부나 의사들이 알았으면 한다. 자율점검은 의사단체가 전문가 집단으로 해야 할 일이고, 전문가가 가진 특권이기에 속히 의사협회가 찾아와야 한다.

전문직이 된다는 의미는 자율규제가 핵심적인 가치로 그 역할을 하는 것이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의사’라는 개념은 전문직으로서 대중의 이익에 헌신하고, 관심을 가지면서 끊임없이 자율점검을 통해 자기 점검을 하는 직업윤리를 핵심 직업 가치로서 내재화하는 직종이다.

전문직의 엄격한 정의에 따르면 의사는 관료 조직과 같은 유형의 외부통제가 필요 없다. 전문직은 스스로 통제하는데, 이러한 이유는 이것이 그들을 정의하는 것이며, 그들 업무는 바로 타자의 이익, 즉 환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타율이 아닌 자율적 통제 방법으로 동료 평가에 자신을 연결하는 일, 사회계약 안에 동료평가와 자율점검을 연관시키는 일, 전문직업성의 폭 넓은 사안들을 사회계약과 연관시키는 일, 사회적 통제라는 본질에 전문직업성을 이어주는 일에 대해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이제 자율을 택할 것인지, 타율에 끌려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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