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플라톤은 “철인(철학자)에 의한 지배가 이상적이지만 법의 지배는 차선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다“라고 했다. 법치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주는 말이다. 법치주의(法治主義)는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원리이다. 명확하게 규정된 법에 의해 국가권력을 제한·통제함으로써 자의적인 지배를 배격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치주의는 통치자의 자의에 의한 지배가 아닌 합리적이고 공공적인 규칙에 의한 지배를 통해 공정한 사회를 이루어가는 데에 있다.

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 의사평론가

하지만 법적용의 기준이 모호하거나 기준이 흔들리면 사회에 혼란을 일으킨다. 무리한 법적용이나 들쑥날쑥한 법적용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게 된다. 법치가 사라진 나라에서는 국민이 보호 받기 힘들다. 억지와 위선만 남은 사회에서는 단지 그들만의 법치만 있을 뿐이다. 보호받지 못한 국민들은 공포에 빠지게 된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법치가 무너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8년 10월 2일 의사 3명이 법정구속 되었다. 2013년 횡격막 탈장을 일으킨 아이의 죽음에 대한 형사재판에 관련된 의사들이다. 구속사유는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법정구속을 결정한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법원의 상식을 넘어선 결정에 대한민국 모든 의사들은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의료분쟁을 해결하겠다고 의사를 감방에 가둔다는 것은 법적용에 있어 큰 오류와 실수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솔직히 도를 넘어선 판사의 판결을 받아야 하는 대한민국 법치가 부끄럽고 신뢰가 안 간다.

의사의 실수와 오진 등의 잘못을 감싸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사의 오진이나 실수는 당연히 정확한 전문가적 판단을 거친 후 잘못한 부분에 있어서 그에 상응하는 징계조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불의한 이익을 취하거나 악의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닌 나쁜 결과를 두고 의사를 법정구속에 처하는 비이성적인 나라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뿐이다. 원치 않지만 만나게 되는 나쁜 결과를 누구나 겪을 수 있기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결 방법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무엇보다도 나쁜 결과를 당한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일이 먼저다. 그 후 왜 그런 일이 발생되었는지 과정을 정확하게 판명한 후 가족들에게 결과를 알려주어야 한다. 또한 후속 조치로 슬픔을 당한 유족들에게 적절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해당의사는 조사결과 의사로서 전문적 판단이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재교육을 받아야 하고, 만약 나태에 의한 것이라면 그에 따른 징계를 받아야 한다. 또한 비윤리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당연히 징계를 받아야 한다. 만약 의사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파렴치한 성적 범죄이거나 반인륜적인 범죄에 해당할 경우 인신을 구금하여 벌을 받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고 그런 판결이 법치를 이루는 일이다. 하지만 도를 넘어선 법적용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법치를 무너트려 버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세 가지 행위 중에서 모자람과 지나침을 악덕으로 보고, 양극단의 중간을 미덕(arete), 곧 중용(中庸)으로 보았다. 분노에 있어서 모자람은 당연히 화를 낼 일에 화를 내지 않아 바보취급을 당하거나, 자기나 친구들이 모욕을 당해도 수수방관하는 노예 같은 상태를 말한다. 분노의 지나침은 화를 내서는 안 될 일에 화를 내거나, 너무 지나치게, 너무 오래 화를 내는 경우이다. 분노에 대한 중용은 온유함이다. 온유함이란 당연히 화낼 일로, 당연히 화내야 할 사람들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만큼, 적당한 때에, 적당한 기간 동안 분노하는 것을 말한다.

의사들은 법치가 무너지고 의사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 수수방관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 바보같은 집단이 아니다. 전문가다운 지적과 분노의 표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악덕이기 때문이다.

법을 적용하고 공의를 실현해야 하는 법관의 판결 역시 과함도 부족함도 없는 중용을 지켜야 한다. 악덕을 피하고 미덕의 법치가 이루어져야한다. 지금이라도 이성과 지성을 갖춘 법치로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사회가 안정되어가기를 바래본다. 또한 누구나 안심하고 인정하고 신뢰받는 법치를 이루어 주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