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초 열린 대한의사협회(의협) 대의원회는 일부 대의원들이 요구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구성을 부결시켰다.

37대 노환규 집행부에서 38-39대 추무진 집행부에 이르는 동안 의협은 무려 6차례에 걸쳐 비대위가 설치됐다는 점에 비춰볼 때 최대집 집행부에서의 비대위 시도의 무산은 오히려 생경한 모습이다.

이정윤 편집부국장

어느 조직에서나 비대위 설치는 집행부가 회원(국민)들이 위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을 때만 구성하는게 일반적 준칙이다.

정권을 잡는 것이 주기능인 정당에서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신임을 받지 못하면 집행부(지도부)가 해체되고 그 자리에 비대위가 들어선다.

사회단체 등은 선거를 통해 구성된 집행부가 불신임 등 정관이나 규정 등 합법절차에 따른 집행부 공백이 생기면 비상 집행부(비대위)를 설치한다.

집행부와 비대위가 공존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 헌법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두고 행정부 수반 유고시 비대위를 구성하지 않고 (대통령) 권한 승계 체계를 둔 점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존중해서다.

그럼 의협 비대위의 최근 역사를 더듬어보자.

노환규 집행부에서는 두차례 비대위가 구성됐다.

첫 번째는 2012년 11월 ‘바른의료제도 정착을 위한 비대위’이고 두 번째는 2014년 3월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비대위’ 였다.

원격의료나 영리병원 저지를 위한 비상 투쟁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재임기간이 긴 추무진 집행부에서는 네 차례나 비대위가 설치됐다.

‘의료정상화’ , ‘규제기요틴 저지’, 문재인 케어 저지‘ 등을 내세웠다.

‘바른 의료제도 만들기’에서부터 ‘문재인 케어 저지’까지 비대위가 표방한 비대위 구성 목표는 모두 회원들이 직선으로 선출한 집행부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에 불과하다.

집행부가 회원 권익을 위해 선거를 통해 선출됐는데, 그 집행부를 ‘식물 집행부’로 만든게 바로 비대위다.

2014년 4월에도 비대위가 구성됐는데 당시 노환규 회장이 대의원회의 불신임으로 사실상 집행부 기능이 와해된 상태여서 그나마 명분이 있어 보인다.

의협 비대위는 이런 조직체계상 문제 뿐만 아니라 ‘한지붕 두가족’의 불합리-비효율을 노정했다.

비대위가 설치됐으나 예산 집행 등은 집행부 라인을 통해 이뤄졌으며, 비대위 구성원(비대위원)들도 시도의사회, 대한개원의협의회, 전공의협의회 등 의협 집행부 외곽조직 임원들도 채워졌다.

집행부가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비대위를 구성해 업무 혼선만 일으키다 흐지부지 해산된 것이다.

거듭 지적하지만 회원들이 뽑은 집행부는 ‘기능 상실’을 제외하고는 대체될 수 없어야 한다.

위임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회원 다수가 판단한다면 대의원회에 주어진 불신임권(탄핵)을 행사하는데 그쳐야 한다.

의협 정관이 이런 본질에 벗어나 있다면 정관도 고쳐야 한다.

의협은 국내 최고의 지성단체 중 하나다.

의협 시스템도 최고단체가 되기 바란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