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9월 10일은 ‘자살예방의 날’이었다. 올 들어 정부는 자살예방과를 신설하고 범부처 차원의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을 마련,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살기도로 인해 응급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이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 성공적인 자살예방사업 수행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자살기도 과정에서 신체 상해가 심하여 응급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입원실을 구하지 못하여 이 환자들을 어떻게든 도와서 응급 입원을 시키려는 경찰관들과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이 입원실을 찾아 병원들을 전전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는 경찰청이 보건복지부에 병상 문제의 해결을 강력하게 요청하였고,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의학과 입원 병상이 있는 전국의 병원에 공문을 보내 응급입원 및 행정입원 가능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취약한 정신보건 시스템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정신보건의료 전반에 걸쳐 다중적인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필자는 난마처럼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마음으로 응급입원 병상 부족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처방을 제시하고자 한다.

◇얽힌 실타래 그리고 세 개의 매듭= 신체 상해를 동반한 정신질환자의 응급입원 문제라는 뒤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매듭에 주목해야 한다.

첫 번째 매듭은 2016년 개정된 정신보건법과 관련된 것이다. 작년 5월 개정정신보건법이 시행되던 당시 공공병원의 전문의만으로는 부족했던 2차 진단의사를 민간병원에서 공급할 목적으로 주무부서가 2차 진단을 위한 지정진단 의료기관 신청 여부를 행정입원병원 신청과 연계시킨 바 있다. 그 결과, 행정입원이 가능한 정신병원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대학병원들이 지정진단 의료기관 신청에 대거 불참함으로써 신체질환이 복합된 정신질환자들 중 행정입원시킬 수 있는 병상은 더더욱 부족해질 수밖에 없었다. 만성적인 저수가로 인해 적자구조를 면치 못하고 있는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이 원내 진료에 전념해야 할 사정이라, 외부 출장 진단을 시행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매듭은 만성적인 정신건강의학과의 저수가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응급 입원 대상 환자의 다수가 행정입원으로 이어지고 대부분 의료급여 수가를 적용 받게 되는데, 그 수가가 포괄 수가로서 의료보험 수가의 50~60%에 불과하기에 동반된 신체질환의 치료가 가능한 종합병원에서는 적자 발생으로 이어지는 진료를 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조현병과 같은 중증 정신질환자가 자살기도를 한 경우 입원 초기에 다수 인력이 투입되어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한데, 의료급여 수가는 물론 의료보험수가마저도 이와 같은 급성기의 집중치료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신체 손상까지 동반하여 치료 난이도가 배가되는 환자들의 경우 입원 병상 확보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세 번째 매듭은 공공정신의료의 취약성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수가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공공병원 병상이 신체 질환을 동반한 정신의학적 응급 환자들을 받아 주어야 하나 전체 정신건강의학과 병상 중 공공병원의 병상이 7%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실타래를 더욱 엉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살예방이라는 현 정부의 지상과제의 해결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최근의 조현병 환자에 의한 경찰관 살해 등 개정 정신보건법으로 초래된 진료 공백과 이에 따른 국민 안전의 위험과도 맞닿아 있기에 그 해결을 위한 노력이 전면적이고도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신속하게 해결할 타개책은 무엇인가?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내었듯이 행정입원과 지정진단 의료기관 연계의 문제, 저수가의 문제, 공공정신의료의 취약성의 문제라는 세 개의 매듭을 잘라낼 세 개의 화살이 필요하다.

◇얽힌 매듭을 풀어줄 세 개의 화살= 첫 번째 화살은 정신보건법 관련 고시의 신속한 개정을 통해 행정입원 의료 기관신청과 지정진단의료기관 신청 간의 연계를 해제하는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응급입원에 이은 행정입원이 가능한 병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화살은 수가의 현실화이다, 먼저 현재 포괄수가제인 의료급여 입원 수가를 행위별 수가제로 신속히 전환하여야 한다.

그리하여야 입원 후 신체적, 정신적 문제의 초기 집중치료에 필요한 검사비, 처치 비용 및 정신요법 비용이 충당될 수 있다. 아울러 보험수가 또한 급성기집중 치료를 반영할 수 있도록, 현실화되어야 한다.

세 번째 화살은 공공정신의료의 확충이다. 공공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병상확보가 단기간에 어렵다면 민간 병원에 “공공의료 수행병원” 역할을 부여하고 폐쇄 병동 운영을 지원함으르써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해법은 최근 수년간 종합병원에서의 정신병상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급성기 정신의료의 기반이 전반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

필자를 비롯한 정신의학자들로 하여금 더욱 다급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정신보건법 졸속 개정의 문제, 고질적인 저수가의 문제, 공공정신의료의 취약성이라는 문제가 정신의료 전반에 만연한 문제라는 사실이다, 정신보건법의 재개정, 수가의 현실화, 공공정신의료의 강화라는 세 개의 화살은 우리나라 정신건강정책 전반에도 꼭 필요한 조치인 것이다. 주무 부처의 현명하고도 신속한 대처가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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