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보공단이 밝힌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를 보면 빅5병원의 지난해 진료비 수입이 총 4조원을 돌파하여 한 해 사이 약 1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5개 병원의 진료비 규모가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5.8%를 차지한다니 엄청나다. 참고로 환자를 진료하거나 투약하는 요양기관은 9만 곳이 조금 넘으며, 이 가운데 의료기관(치과, 한의 포함)이 7만 곳에 육박하고 나머지는 약국(2만1,737개) 이다. 단순하지만 9만여 요양기관 가운데 단지 5곳에서 진료비의 5.8%를 가져간다는 것은 독식이 아닐 수 없다.

안병정 편집주간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이고, 앞으로가 문제다. 구체적인 통계는 아니지만 올해 들어서는 이들 빅5는 말할 것도 없고, 주요 대학병원의 환자수가 줄잡아 40% 가량 늘어나 환자를 주체하기 어려운 지경이란 소식이다. 그렇다면 빅5 등 대형병원들의 진료비 점유율은 한층 더 높아질 게 뻔하다.

그 까닭이야 건강보험보장성 확대시책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특진제가 완전 폐지되었고, 뒤이어 상급 병실료가 급여화 되었으며, 초음파 등 고가 검사도 급여가 확대되는 바람에 환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큰 병원만 찾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주요 대형병원들이 넘치는 환자로 쾌재를 불러야 할 텐데 그들의 얘기는 좀 다르다. 대폭 깎인 수가를 환자수로 커버해야 되는 상황이라 ‘몸만 고달프지 실익은 없다’고 하소연 한다.

어쨌거나 대형병원들은 문 케어로 인한 수입 손실분을 환자수로 벌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문 케어’에도 불구하고 ‘박리다매’로 살림을 지탱하는 대형병원들의 대처가 ‘용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의료체계의 왜곡이나 대학병원들의 순기능을 생각하면 정말 불행한 일이다.

과연 대형병원들이 환자진료에만 목을 매는 상황이 정상인가. 빅5를 비롯한 대학병원들은 진료가 본업은 아니다. 교육이나 연구가 더 큰 책무다. 그럼에도 우수한 두뇌 집단들이 환자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처방전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현실은 분명 비정상이다.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으로 중소병의원의 몰락은 차치하고라도 대형병원들이 진료에만 집중하여 몸집을 불려가는 것이 의료 생태계의 건강성이나 국가 경쟁력으로 볼 때 뭐가 득일까.

대형병원의 환자집중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단지 문 케어로 비용요소가 희박해져 그 나마의 빗장이 풀려 심화되는 결과이다. 이대로라면 덩치 큰 병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환자를 더 끌어 모아야 되고, 환자들도 같은 값이면 전문 의료진과 시설, 장비 등 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형병원을 선호할 것임은 당연한 이치다.

정부는 그동안 연구중심병원을 육성하고, 미래의 성장 동력을 이끌 의과학자 양성에 나서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정작 그 임무를 맡은 대학병원들은 지금 환자진료에 매몰되어 ‘진료병원’으로 전락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병원이 진료의 양을 늘리지 않고서는 그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비정상을 타파하려면 대학병원이 희귀난치성질환이나 중증환자 치료에만 집중하여 환자수를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여도 경영이 가능토록 수가체계를 확립해 줘야 한다. 동시에 경증환자들이 대학병원을 함부로 이용할 수 없는 강력한 통제기전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문 케어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차선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운영의 묘이고, 문 케어의 기반 위에 수가의 적정화를 추구할 때다. 그 중 가장 급한 게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이라고 본다. 하루빨리 문 케어의 역풍을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으로 막았으면 한다.

/ 안병정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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