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세상에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나이, 성별, 관심분야 등에 따라 부러워하는 것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나의 경우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부러워하는 것이 달라졌다. 젊었을 땐 노래를 잘하거나 운동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지금은 누가 산티아고 순례를 간다든가, 히말라야나 차마고도 트래킹을 간다고 하면 그들의 건강과 용기가 부럽다. 지중해나 카리브해 크루즈 여행도 멋있어 보인다. 시골에 전원주택을 갖고 주말이면 지인들에게 바비큐 파티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부럽다. 그러나 나도 무리하여 저지르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렇게 부러울 것이 없겠다.

그런데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애써 번 돈을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에 아낌없이 쓰는 것이다. 돈이 많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손에게 남겨 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정년퇴직하신 지 30여년이 된 선배교수를 후배교수들이 모시는 만찬 자리에 초청을 받았다. 사회를 맡은 후배교수의 인사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오늘 교수님을 저녁 만찬에 모신 것은 그동안 매년 한 번씩 선배님을 골프에 모셨는데 2~3년 전부터 걷는 대신 카트를 타시더군요. 선생님께서 90세가 넘으시면서 운동이 무리라고 생각하여 앞으로는 운동 대신 식사자리로 모시자고 후배들 간에 의논이 되었습니다.”

‘정년퇴임하신지 30년이 넘으셨는데 여태껏 매년 모신다니!’ ‘얼마나 큰 업적을 남기셨기에?’ ‘후배교수님들도 대단하시다’ 직장생활을 30년 이상 한 필자도 그러한 예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궁금증은 교수님의 감사말씀에서 풀렸다. “이제 내가 늙었다고 끼워주질 않으니 골프 회원권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를 학교에 기부할테니 후배 교수님들이 상의해서 요긴하게 쓰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에서.

‘자손들에게 물려주어도 될 터인데, 참 어려운 결정을 하셨군.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학자생활을 하셨으니 후배교수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노 교수가 별세하셨는데, 학교에서는 대학장(大學葬)으로 모셨다. 영결식에서 교수님이 재직 중, 또 후에도 간간히 학교에 기부하셨고, 최근엔 많은 재산을 후학들을 위하여 희사하셨다고 들었다.

이렇게 자신이 근무한 직장의 후배들로부터 인정받고, 최상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분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분이 아닐까?

이렇게 귀한 재산을 남을 위해 쓸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넉넉한 것이다. 자기가 이룬 성공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룬 부(富)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에 감사한다. 감사하기에 자신이 이룬 부가 가치 있게 써지길 바란다.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 도움을 주기도 하고. 학문, 스포츠, 음악, 예술 등의 발전을 위해 쓸 수도 있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분들이 부럽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다고 부러워만 하면 안 되겠다. 나의 능력과 분수에 맞게끔 사회를 위하여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글을 쓰기도 하고, SNS로 내 생각을 알릴 수 있다. 또는 사회복지단체에 후원금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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