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1>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

루드비히 본 베토벤

[의학신문·일간보사=의학신문] 음악사를 살펴보면, 멘델스존 같이 유난히 평탄한 인생을 살았던 작곡가가 있는가 하면, 유독 불운한 삶을 살았던 작곡가도 있습니다. 독일 출생의 작곡가인 루드비히 본 베토벤(1770-1827)이 그렇습니다.

그는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와 40살에 결핵으로 숨진 어머니 때문에 16살부터 아버지와 두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곧이어 그는 심한 우울증과 건강악화를 겪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주 찾아오는 복통에 이어 가장 큰 문제는 청력상실이었죠.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로 알려진 서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보다 더욱 완벽하게 갖춰야 하는 감각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어찌 받아들일 수 있을까…나는 추방된 사람처럼 외톨이로 살아야해…사람들 가까이 다가가면 불에 덴 듯한 공포감이 나를 사로잡고, 나의 상태가 간파될까 봐 겁에 질린다.” 마치 화가가 시력을 잃어버리듯, 외과의사가 손을 못쓰게 된 것처럼, 이 위대한 작곡가의 귀머거리 증세는 빠른 속도로 악화됩니다.

현실 고통을 드라마틱한 음악으로 표현

죽을 것 같은 괴로움과 절망, 삶이 무너져내리는 고통을 수도없이 맛 보았겠지요. 하지만 베토벤은 고통의 순간에 음악의 창조세계로 들어가, 현실에서의 고통을 당대 누구보다 더 드라마틱한 음악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나를 붙잡아둔 건 오로지 예술이야. 아, 나의 내면에 들어 있는 것을 모두 꺼내놓기 전에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어. 그래서 이 비참한 삶을 견뎌냈지” 그는 자신과 자신의 음악의 운명은 행복한 것일 수밖에 없고, 자신의 음악을 듣는 사람은 온갖 불행에서 놓여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키는 기껏해야 160센티미터 정도였다고 합니다. 땅딸막한 체격에 이상할 정도로 큰 머리, 아마도 야만인 같은 인상을 주었다고나 할까요. 이런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하고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몇번 했을 뿐입니다. 괴팍한 성격 때문에 쉽게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그는 평생 고독이라는 인생의 쓰라림을 안고 살았지요. 하지만 고통이 승리와 기쁨으로 승화되어있는 그의 음악을 사랑한 수많은 청중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당대 음악가로서는 유일하게 귀족들과 가까운 친분을 쌓으며 다방면으로 대우를 받았습니다.

고난 중에도 베토벤 음악은 ‘희망’ 전해

과연 베토벤의 삶은 진정으로 불행했을까요? 그의 인생을 불행하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나요? 베토벤은 인생의 모든 불행의 요소는 다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고난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자로서, 그의 음악은 고뇌, 갈등, 고독, 혼란과 아픔을 지나 벅찬 기쁨과 희망을 말하고 있으며, 이 고통의 산물은 후대에게 끊임없는 감동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3번 <에로이카>는 소위 “영웅교향곡”입니다. 그 곡은 원래 베토벤이 우상처럼 숭배하던 나폴레옹에게 바치려고 했던 곡으로 제목도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일 예정이었지만, 1804년에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자 베토벤은 분노에 차서 표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고 합니다. 그가 의식했던, 하지 않았던 이 교향곡의 주인공은 나폴레옹이 아닌 베토벤 본인이었을 것입니다. 개인의 체험에 근거하듯이 이 거대한 교향곡의 네 개의 악장은 절망과 맞서서 그것을 넘어서는 숭고한 영웅주의를 전달합니다. 작품에서 작곡가는 긴 투쟁의 길을 씨름하듯 걸어가면서 결국 인간 의지의 불굴의 승리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 삶도 희망찬 피날레를 기대하며…

베토벤과 같은 역경이 아니더라도 지금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의 인생 또한 그 못지 않게 치열합니다. 각자 책임져야 하는 삶의 무게에 눌리고 자신과 타인이 지향하는 모습을 유지하기 바쁜 나머지, 진정으로 나 자신에 대한 충분한 고찰도 어려운 상황이지요.

베토벤은 고통이란 것은 초월하기 전에 먼저 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장벽을 넘으려고 하기전에 먼저 받아들이고, 내가 사랑하는 곳으로 잠시 물러서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에서 위로와 힘을 얻고 다시금 나란 사람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과정 중에 서서히 고통이 희망으로 전환되리라 믿습니다. 베토벤의 삶과 음악이 고통이 아닌 승리의 피날레로 마무리 했듯이 우리의 삶에도 그런 희망찬 피날레를 기다리면서 또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