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학교실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의학신문] 남아 선호전통이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졌다. 결혼 후 ‘첫 아들을 낳으면 둘째도 아들일까 봐 아이 낳기를 포기한다’는 말조차 돌고 있다. 한편에서는 불임과 난임, 조기폐경이 문제가 되고 있고, 세계 최강의 저출생 국가라는 이름을 획득한 후 우리 정부 어떤 부처에서는 애 낳을 수 있는 일이라면 양잿물이라도 집어 삼킬 태세를 갖추고, 조선과 고려시대를 다 뒤져 근거를 찾아낼 심산인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에 한방을 통해 난임을 해결해 보잔다. 이렇게 국가가 혼신의 힘을 기울이면 머지않아 한집에 서너 명 아이들이 태어나서 어린아이 울음소리로 가득한 동네에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가져본다. ‘이런 허황한 일을 하는 부서가 설마 보건복지부는 아니겠지…’ 하는 또 다른 희망도 가져본다. 의사인 필자가 우리 감독기관인 보건복지부를 비난하거나 시비를 걸면 면허취소 될까 겁난다. 요즘은 뭐든지 뒤져서 볶아대니….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후가 잠자리를 함께 하는데도 택일이 필요했고, 그 날이 왕후가 생리를 끝낸 직후였다는 의사학을 연구하시는 황 교수의 글을 읽었다. 그래서 조선의 왕비들의 회임률이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 기간 동안은 임신되기 힘든 기간이라 피임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말도 들었다. 지금은 일반인도 아는 이야기를, 그 시절에는 위대한 스승 허준선생을 비롯한 당대의 어의들도 그렇게 믿으셨던 모양이다.

왜 그 상식이 틀린 지식이라고 말하는 이 시대의 후배 한의사는 없는지 모르겠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과학화’하는 길 아닌가? 애 낳기 힘든 사람을 고쳐주겠다는 의지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냐만, 경험으로 고쳐 보겠다면, 필자가 아는 상식으로는 뒷마당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100일 치성하는 것도 효과 있어 보인다. 그것이 우리 민족만이 고유하게 간직한 오랜 경험과 전통 아닌가?

절에 가서 백일기도하는 것도 효험이 있고, 3년간 하루같이 시어머니가 새벽기도를 나갔더니 며느리 애가 섰다는 말도 들어 봤다. 은퇴하고 나면 저런 떠도는 소문이 과학적 근거는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해볼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그걸 꼭 연구를 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일까? 어차피 떠도는 모든 이야기가 근거 희박한 말들이니, 나도 ‘백일기도 난임 퇴치 사업단’이나 꾸려서 마치 근거가 있는 듯 장사나 한번 해볼까? 효과는 없어도 약 먹이는 것은 아니니 최소한 해는 없지 않을까? 해만 없으면 되지 효과는 무슨… 애 갖기가 그리 쉽냐? 그런데 정말 해는 없을까? 오랜 경험… 오래된 전통? 그 소중한 경험으로 난임을 한방에 날려 보내자는 뜻일 것이다. ‘한방 난임’.

그런데 이번에는 산부인과에서 ‘낙태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뉴스거리가 되었다. 애를 낳지는 않는데, 원치 않는 아이를 많이 만들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낙태가 사회의 이슈가 되고 여성의 권리이니 헌재까지 올라가 판단을 요구하는 모양이다. 한쪽에서는 총력을 기울여 애를 만들어 보겠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원치 않던 아이는 지우는 권리를 달라고 하고, 또 한쪽에서는 낙태 수술을 거부하고… 어지럼증이 생긴다. 뭐가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이제는 피임에 실패하면 제약회사를 고소 고발하는 사태가 일어날 것 같다.

아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기가 안생기고, 원치 않는 아기는 많이 생겨나고, 이 와중에 원치 않는 아기 낙태 시키면 면허정지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저출생을 해결할 대단한 묘수’를 찾아낸 듯싶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행해지는 낙태 건수가 보고에 따라 30만에서 70만까지 된다고 한다. 낙태 수술 못하고, 안하면 연간 최소 30만명의 신생아는 더 태어날 것이다. 내년에는 가장 짧은 기간에 저출생 문제를 해결한 위대한 OECD 국가 1위로 등극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소아과 의사들 다시 바빠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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