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조치는 '미봉책'…근본적 해결책 나와야"

[의학신문·일간보사=김현기 기자] 정부가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수술)의 처벌을 결정함에 따라 의사들도 수술 거부를 선언한 가운데 의정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8월 17일 복지부는 낙태수술을 포함하는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시행령을 공포했으며, 이에 분노한 산부인과 의사들은 28일 낙태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했다.

이에 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낙태와 관련 헌법재판소의 판결의 나올 때까지 낙태수술에 해당하는 1개월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유예하겠다며 한발자국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은 여전히 낙태수술 중단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복지부가 행정처분을 유예한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산부인과 의사들은 복지부가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낙태수술 전면 거부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낙태 문제는 의료계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두고 헌법재판소(헌재)에서 심리 중이며,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낙태죄 폐지가 제기된 바도 있다.

헌재의 경우 낙태한 여성과 시술한 의사를 처벌토록 한 형법이 위헌적이라는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공개변론까지 진행했지만 지난 6월 재판관 9명 중 5명이 교체되면서 새 재판부로 넘어간 상황이다.

또 국민 청원의 경우 청와대 응답 기준인 20만명을 돌파하면서 지난해 11월 조국 민정수석이 직접 답변을 하기도 했다.

당시 조국 수석은 청와대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하지만 낙태죄 폐지 여부의 결정 주체는 사법부에 있고, 관련법의 개정은 입법부인 국회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법부, 국회, 정부 어디에서도 낙태죄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법 개정 추진 등 제대로 진행된 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지부가 낙태수술을 비도덕진료로 규정한 것.

이에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김동석)는 “정부는 한시적인 유예가 아니라 생존이 불가능한 무뇌아조차 수술을 못하게 만든 모자보건법을 현실에 맞게 사회적 합의에 따라 새롭게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근본적으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낙태수술을 포함시키면서 여성과 의사에게 비도덕함을 낙인 찍은 불명예를 용납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김동석 회장은 “우리는 의사이기 이전에 국민으로서 법을 준수해야하는데 그동안 사문화된 법의 방조로 여성과 의사는 잠재적 범죄자가 됐다”라며 “이제 더 이상 의사만의 책임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낙태수술 문제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것이 아니라 의학적인 근거가 충분하고, 현실적인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한다는 게 산부인과 의사들의 입장이다.

김 회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복지부는 관련 법이 사회적 합의에 의해 개정될 때까지 낙태수술을 원하는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의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줘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만약 복지부가 의사들에게 구체적 대처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일시적인 방편으로만 처벌을 유예하고 오히려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삼으려 한다면 우리는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낙태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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