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의학 전문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이 학문적인 주제로 대두된 것은 불과 40여 년에 불과 하지만 전문직업성 개념은 기원전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적어도 2000년 이상 이러한 용어가 사용되어 왔다.

초기 의사들 치유자 역할만 수행

초기 의사들은 단순한 치유자(healer) 역할만 수행했다. 치유자 역할에 머물던 의사에게 전문직(professional) 역할이 더해지는 역사적 과정은 당연히 전문직업성의 형성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처음 의학(Medicine)과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연관시킨 사람은 AD 1세기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법정 의사인 스크리보니우스(Scribonius)로 알려졌다. 그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담겨 있는 전문직 특성을 가져와 전문직업성 정의를 “고통을 덜어주려는 측은지심과 자비에 대한 책무”라고 했다. 고대의 고상한 의미의 전문직업성은 전문 직종인 의학, 법학, 신학이 출현한 중세까지 이어져 왔다.

사회적 지위와 자율권을 가진 현대적 의미의 전문직은 중세 유럽과 영국의 대학과 길드(guilds) 조직으로부터 생겨났다. 이 시기 전까지 의학은 최소한의 치유 능력만을 가지고 있었다. 소수의 집권층을 위해서만 행해졌고 일반 대중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단순한 치유자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차츰 대학과 길드 조직을 통해 전문적인 지식과 술기를 익힌 사람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증요법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하는 특허법이 생긴 19세기 중반부터 현대의 전문직 지위를 가지기 시작했다.

중세 이후 과학 발달과 함께 의학 지식이 늘어남에 따라, 전문직은 대학과 더 가까워지게 된다. 윤리강령을 만들어 치유자(healer)와 전문직(professional)의 역할을 규정하여 전문직에 대한 사회 신뢰를 이끌어냈으며, 과학은 두 가지 역할 모두에 힘을 실어주었다.

19세기 과학은 의학에 더 큰 힘을 실어 주었다. 의학을 좀 더 효과적이고도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재화가 모여지고 환자들은 이 돈으로 보건의료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사회적 변화는 대중들로 하여금 특별한 조직을 통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고자 하는 요구를 가지게 했고, 기존에 전문직에게 이 역할을 맡겼다. 전문직의 개념이 더 구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의료 전문직은 이러한 요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세기 중반부터 ‘의사면허’ 제정

19세기 중반까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의사들이 전문직 단체인 의사협회(national professional medical associations)를 세우고 소속 회원들의 의료 행위를 통제하는 윤리강령을 만들었다. 협회는 정부를 설득하여 의료 행위에 대해 독점권(monopoly)을 인정해 주는 의사면허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현대 전문직의 기반은 더욱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현재 시각에서 재조명해보면 의료에 대한 전문직 지위는 의료와 사회 간의 사회계약을 기반으로 형성되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계약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회계약을 기반으로 이루지는 의료를 통해 의사에게는 지식 기반의 사용, 진료에 대한 자율권, 명망과 지위, 자율 규제의 특권 및 금전적 보상에 대한 독점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독점권은 의사들과 전문직에게 이타적이고, 정직하며, 인격적 통합성(integrity)을 갖춘 능숙한 전문직 역량과 공공의 선을 위한 헌신을 요구했다. 철저한 의학 전문직업성을 가지고 의료를 행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사회와 시대가 발전하면서 사회와 전문직 사이에 이루어진 계약의 세세한 내용은 조금씩 변해왔지만, 사회와 의사집단 사이에 이루어진 전문직업성과 사회계약에 대한 공감대는 변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문직 위치를 잘 유지하고 있는 나라 의사들이 보여 준 전문직으로서의 자세다. 그들은 전문직으로서 의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윤리강령과 자율교육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계발하고 지키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전문직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발휘하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중의 신뢰를 쌓아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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