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
고려의대 흉부외과 교수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병의원 의료기관과 응급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난동은 의사나 간호사, 구급대원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의료는 사회적 계약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계약 당사자인 국민과 의료인 간의 선량한 계약관계(책임과 의무)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특히 응급실은 수시로 생사가 교차하며 의료의 공공성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현장이다. 응급처치 중인 의사와 간호사에 대한 폭력과 진료방해 행위는 의료인에게는 직접적인 상해와 살인 행위일 뿐 아니라, 다른 환자에게는 간접적인 상해 및 살인행위가 된다.

응급진료의 중단과 공백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폭력 난동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개인 간의 가해와 피해의 개인 문제이기 이전에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의료인이 환자를 보면서 그만한 일은 감수해야하지 않느냐’고 한다. 만일 아픈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 돈벌이의 대상이라면 장사하면서 그 정도의 소란은 감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료 행위는 사회적 계약에 근거한 행위이다. 응급진료를 하는 의료인에 대한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 규정의 대상이 아니도록 법을 개정하여 강력히 처벌하여야 한다.

최근 의료계는 이를 위해 청와대에 국민청원운동을 실시하였다. 해당 청원제도는 한 달 사이에 청원인이 20만명을 넘으면 제도적인 방안을 고려하는 현대판 신문고이다. 지난달 7월 3일부터 8월 2일까지 노력한 결과, 청원인 숫자가 14만 7885명에 그치고 말아 청와대의 공식입장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국내 13만 의사와 20만 간호사 수를 고려할 때 참으로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일치된 단결과 동료 의료인들의 협력, 정치권과 정부부처 그리고 언론과 국민들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성과를 이룬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국회도 적극 대응하여 의사 출신의 박인숙 의원과 간호사 출신의 윤종필 의원 뿐 아니라, 이명수·윤일규 의원 등이 힘을 합해 의료인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되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응급실 의료진 폭행에 대해 가중처벌하는 의료법과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와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한응급의학회 자체 설문조사에서 ‘응급실 근무자의 55%가 근무 중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전공의 설문에서는 93% 이상에서 응급실 폭력 및 난동을 문제로 지적하였다고 한다. 또한 응급실 폭력이 발생했을 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빈도는 내원 환자 10만 명당 한 달 평균 5.4회라고 하는데, 대부분 경찰이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공권력이 응급진료 현장의 폭력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인 간의 문제로만 보고 방관한다면 분명한 직무유기이다.

우리 의료인도 일반 국민들이 응급실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분노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응급실 진료와 폭력행위를 서비스 디자인 측면에서 해결해 보려는 노력은 눈여겨 볼만하다. 서비스 디자인이란 의료서비스 자체가 디자인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그 핵심은 응급환자와 보호자의 불안한 마음이 분노로 번지지 않도록 소통하는 것이라 본다.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가 자신이 진료단계의 어디쯤 와있는지 의료진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의료진의 진료행위를 관찰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경험을 관찰하고 그것을 시각, 공간, 제품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물론 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환자들에 비해 부족한 의료 인력의 문제는 진료전달체계 또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보여준 의료계의 호소에 국민들이 호응을 하였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의료계의 목소리가 국민들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 믿는다.

앞으로 실효성이 있는 대안이 마련되어 국민들의 권리와 의료인의 인권이 보호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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