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한국·그리스 여성 3500여 명 데이터 분석 조사
자녀 5명 이상 출산 여성, 1~4명 출산 여성에 비해 70% 높아

[의학신문·일간보사=정윤식 기자] 국내 의료진이 여성의 출산 및 유산 경험이 나이가 든 후 알츠하이머병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 주목된다.

분당성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사진 왼쪽)와 배종빈 임상강사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은 출산과 유산이 알츠하이머병원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최근 연구 결과를 13일 밝혔다.

분당서울대병원 김기웅 교수 연구팀(공동 제 1저자 배종빈 임상강사)은 국내 60세 이상 여성 3574명, 그리스 연구팀과 협력해 65세 이상 그리스 여성 1074명을 대상으로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출산과 유산이 여러 인구학적 요인, 만성 질환, 그 외 생식 관련 경험 등과 연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궁 혹은 난소 적출 수술을 했거나 현재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고 있는 여성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해 최종적으로 총 3549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나이, 교육정도, 경제수준, 직업, 만성질환(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우울 증상, 폐경 나이, 생식 기간, 모유 수유, 과거 호르몬 대체 요법 여부 등의 요소를 통제해 분석한 것.

연구 결과, 5회 이상의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은 출산 경험이 1~4회인 여성에 비해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70% 높게 나타났다.

또한 유산을 경험한 여성은 이를 경험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절반에 그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여성과 그리스 여성을 각각 분석했을 때에도 출산과 유산이 알츠하이머병 위험에 미치는 영향은 유사한 경향성을 보였다.

아울러 연구진은 치매가 아닌 여성들에서도 출산과 유산이 인지능력에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기 위해 간이정신상태검사(MMSE)를 실시했다.

그 결과, 5회 이상 출산을 경험한 여성의 점수가 1~4회 경험한 여성에 비해 낮았으며 유산을 경험한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점수가 높았다.

즉, 치매까지 발전하지는 않더라도 5회 이상의 출산은 인지기능을 떨어뜨리고 반대로 유산 경험은 인지기능을 높인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와 관련 김기웅 교수는 “신경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에스트로겐의 혈중 농도는 임신 후 점진적으로 증가해 임신 전 대비 최대 40배까지 올라가고 출산 후에는 수일 만에 임신 전의 농도로 돌아온다”며 “지나치게 높은 농도의 에스트로겐은 오히려 신경 독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갑작스런 에스트로겐의 감소 또한 신경 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여러 번의 출산으로 이와 같은 급격한 호르몬 변화를 반복적으로 겪는 것은 뇌 인지기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반면 주로 임신 초기에 일어나는 유산은 에스트로겐이 경미하게 증가하는 임신 첫 세달 간 일어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 시기에 일어나는 여성호르몬의 증가가 뇌세포를 보호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줄여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끝으로 “특히 국내에서는 60세 이상 여성의 다섯 명 중 한 명이 5회 이상의 출산 경험이 있는 실정”이라며 “이런 여성들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인지기능 평가를 실시하고 규칙적 식사와 운동, 인지능력 증진 훈련 같은 예방법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연구 결과는 미국 의학저널 ‘신경학(Neurology)’에 최근 실렸으며 게재 직후 CNN, BBC, Times, Newsweek, Telegraph 등 주요 외신의 집중 조명을 받았으며 복지부와 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질환극복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된 한국인의 인지노화와 치매에 대한 전향적 연구(Korean Longitudinal Study on Cognitive Aging and Dementia; KLOSCAD/과제번호: HI09C1379)의 산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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