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의료 전 분야에서 의학 전문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이 위협 받고 있다. 의사나 환자 그리고 사회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의학 전문직업성 속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특별하고 지속적인 교육이 요구되고 있다. 어떤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더 이상 과거의 접근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의사들만의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수 세기 동안 의학 전문직업성은 하나의 주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전문직업성에 대한 어떤 교육과정도 없었으며, 기본적인 의학 커리큘럼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윤리강령, 오슬러(Osler)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저서를 통해 의료 전문직 가치와 신념을 다루어 왔고, 이것을 모두 의학 전문직업성 내용에 담고 있다.

지금까지 전문직 토대가 되는 이러한 가치와 신념은 학생이 의사가 되는 사회화 과정에서 저절로 습득하고 갖추어가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도제·무언의 지식교육 ‘한계’ 드러나

의학 전문직업성 학습은 전적으로 롤모델에 좌우되며, 학생과 전공의 심지어는 임상의사도 자신들이 존경하는 인물이 보여준 전문직으로서의 행위와 삶의 방식을 보고 자신의 행위를 형성해 왔다. 이런 방법은 여전히 필수적이고 강력한 교육 방법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방법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도제교육’과 ‘무언의 지식’을 통한 교육 방법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의학 전문직업성을 하나의 주제로 교육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동안 의학 교육 내에서 직접 표현되지 않았던 ‘전문직업성’은 이제 분명한 주제로 드러나도록 다루어야 한다.

2019년 면허신고 대상자부터는 면허신고 조건으로 의료윤리, 의료법령, 의료감염관리, 의약품 부작용 사례, 의료분쟁 사례 등을 연수 필수 과목으로 정해 놓고 의학 전문직업성을 강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일부 의사들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을 법으로 정해서 따르도록 하는 것이 맞는 일이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의학 전문직업성에 대한 정의와 사회계약과의 관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사회는 의사들이 전문직으로서 윤리적 소양을 갖추고 이타심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판단과 진료를 할 것이라고 믿고 진료의 특권을 인정해 주고 있다. 의사면허 제도는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의학 전문직업성을 갖춘 의사에게 독점적 의료 행위를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의학 전문직업성과 사회계약의 관계이다. 사회는 이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의사집단에게 자율적인 교육과 자율 규제를 맡기지만, 때로 의사집단이 스스로 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때에는 법이나 각종 규제를 통해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의료와 환자, 의료와 사회와의 관계에서 의학 전문직업성이 중요한 이유다.

의사·사회가 ‘의학 전문직업성’ 설계

사회 역시 의사들이 의학 전문직업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한정된 자원과 여건에서 의사들의 열정과 선의만 요구하는 것을 옳지 않다. 의학 전문직업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가 없다. 의학 전문직업성은 의사와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의료가 사회와 사회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개념은 사회와 전문직 모두에게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의사단체나 정부나 사회가 잘 이해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의학 전문직업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소위 ‘열정페이’다. 의료의 본질을 훼손하는 가장 위험한 요소다. 강요된 자선과 헌신은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없다. 특히 잘못 설계된 의료보험 제도와 비전문적인 심사 기준, 전문의 인증을 정부가 담당하는 부분, 의사 인력 조절과 의과대학 교육의 정치적 이용 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올바른 의학 전문직업성 회복을 위해 의사와 사회가 힘을 합해 속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다. 의학 전문직업성이 잘 발휘될 때 환자에게 유익이 되고 의료가 바로 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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