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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지식을 넘어서
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의료의 영역에 의료보험 제도(health care systems)가 도입되기 전,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만나 진료를 하던 시대의 의료는 지금보다 단순했다. 전문직 종사자와 그들이 봉사하던 사회는 대부분 나라에서 비교적 통일된 모습과 공통된 가치를 공유했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의료와 사회는 매우 다양해지고 있으며, 의사와 환자 사이에 자리 잡은 의료보험제도가 의료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의료의 근본적인 역할 수행은 환자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의사들은 의학 전문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을 위협하는 의료보험 제도로 인해 대중의 신뢰를 잃어 가고 있다. 신뢰의 손상은 완전치 못한 치료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손상되어가는 의료의 본질을 회복시키기 위해 ‘의학 전문직업성’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뛰어난 사회학자로 알려진 엘리엇 프라이드슨(Elliot Freidson)은 “의학 전문직업성은 의료 행위의 ‘영혼(soul)’이다”라고 했다. 영혼(soul)이 없는 육체(body)가 죽은 것처럼 의학 전문직업성이 없는 의료 행위는 죽은 의료다. 의료에 생명력을 주는 것이 ‘의학 전문직업성’이다.

의철학자 한희진 교수는 의(medicine, 醫)를 현대적 정의로 ‘의학(Medical Science, 의과학, 지식), 의술(Medical Technology, 의기술, 술기) 그리고 의료(Medical Practice, 개인과 사회에 대한 실천)가 합쳐진 복합학 또는 융합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중 의료(Medical Practice)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실천의 문제이며, 학문적으로 보면 의학과 의술을 포함하는 ‘생명과학’ 외에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보태져야 적절한 의(醫, medicine)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의(medicine)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의료가 제 역할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한 교수 역시 의료에 있어서 의학 전문직업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醫 ‘의학·의술·의료’ 융합학문

캐나다 출신 내과의사로 미국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대학병원 설립자 중 한 명이며 ‘현대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오슬러(William Osler, 1849-1919) 경은 “의술은 상술이 아니라 기예이며, 비즈니스가 아니라 당신의 가슴이 머릿 속 지식과 함께 작동해야 하는 소명이다”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의학 전문직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의학 전문직업성 교육과 학습이 중요한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습득해야 할 의학지식과 기술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전문직을 양성하려면 지식이나 기술과는 다른, 특별히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필요하며 그것은 더 이상 무언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이 바로 의학 전문직업성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사는 전문직업성을 더 잘 이해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의학 전문직업성은 의학 교육의 모든 단계에서 직접적이면서도 명쾌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의학 전문직업성이 각자의 의료 행위 속에 살아 숨 쉬도록 학생들과 기성 의사들에게 교육돼야 한다.

그동안 의학 교육은 의과학 발달과 함께 쏟아지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며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지식기반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 최소한의 지식 없이는 삶을 제대로 영위해 나가기 힘들기에 이러한 사고는 일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교육이란 어떠한 사실이나 수치를 배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재조명 받고 있다. “교육은 배운 것 가운데 잊어지고 남아 있는 부분”이라는 말이 있다.

위대한 화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는 이러한 개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무언의 지식(tacit knowledge)’이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그는 “사람은 자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알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런 무언의 지식은 삶의 광범위한 경험으로 습득해 왔다. 의료직에 대한 이상과 가치는 멘토와 롤모델로부터 전달되었는데, 이것은 의사가 가지고 있는 무언의 지식에 중요한 요소였다. 의학 교육의 특징인 도제교육 속에 이루어지는 교육의 특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며 만들어지는 무언의 지식으로 전해지던 고전적 의학 전문직업성의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대 자본과 규제 메커니즘 그리고 완전히 달라진 사회환경에 대처하기에는 너무나 큰 어려움이 있다.

의료보험 제도와 관리의료가 의학 전문직업성을 위협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무언의 지식’ 방식으로 의학 전문직업성을 배우고 체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더욱이 인공지능 시대와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의사들은 의학 전문직업성으로 더욱 공고히 무장하지 않으면 의사가 가진 가치와 지위가 한순간에 해체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무언의 지식’ 의학체화 역부족

이제는 현시대에 적절한 전문직업성을 분명하게 교육하고 이러한 요구에 대해 의학 교육 기관은 결단하고 진보적인 교육과정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과 전공의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롤모델로서 자신이 갖춘 의학 전문직업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교육과정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급변하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의과대학 교육부터 기성 의사들의 연수교육 내용 안에 전문직의 가치(values), 태도(attitudes) 그리고 행동방식(behaviors)이 전달되어야 하고, 전문직의 사회화 과정(the process of socialization)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의사를 소명(vocation)으로 생각하고 환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의사, 미래를 준비하는 의사, 신뢰받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과 의사협회가 알을 깨는 용기와 교육비전을 가져야 한다.

의학신문  medicalnews@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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