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고려의대 교수/의사평론가)

우리 사회의 주취 폭력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그에 따른 법적 처벌이 미비하다고 비난을 하고 있다. 그런 중에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난동과 폭력이 지속되고, 의사들의 청와대 응급실 폭행방지 청원은 실패하였다. 문제는 심각한데 당사자 조차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정지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우리나라 의사가 13만 명이라고 하는데 8월 2일로 종료된 청원 참여인원은 14만 7,885명 이었다. 의사 한 명당 가족 4명만 참여를 독려하여도 50만은 돼야 할 일이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의사들 자신 조차도 자신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실감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고, 가족들도 자신의 자식이나, 자신의 남편, 아내가 응급실에서 술 취한 자에게 얻어 맞아도 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의사협회의 리더십 부족도 있을 수 있고, 그동안 우리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보인 행태가 모든 국민의 반감을 샀을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번 일을 계기로 협회의 응집력을 키우는 일에 집행부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른 의료인 단체들과의 연계성도 키우고, 우리만 살자고 하는 짓거리가 아님을 이해 시켜야 할 것이다.

이 사태를 지켜보면서 의협에서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였는데, 경험의 부족이었든지, 홍보능력의 부족이었든지 어쨌든 안타까운 결과에 이르렀다. 그런데 의사보다 훨씬 더 많은 회원을 가진 간호사협회의 도움이 없었던 것이 실패의 큰 원인으로 보이고, 이를 통해 그동안 의사들이 자신의 동료인 간호사를 어떤 태도로 대했으며, 간호사들이 의사에게 갖는 느낌은 어떤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는 계기가 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의협이 하는 일이 뭐냐고 뒤에서 비난하는 회원들은 도대체 이번 사건에서 한 일이 무엇 이었을까? 흥분? 욕? 내가 안 해도 남들이 해주겠지? 무관심? 나는 이 의사들의 무관심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의사협회는 정관에 회원의 의무에 회비 납부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회비를 납부하지 않은 회원이 다수이다. 기본 의무도 행하지 않는 회원이 협회의 일에 과연 관심이나 있을까? 너무나 생활이 어려워서 회비를 납부할 수 없는 의사들이 많은 것일까? 의협이 회비 징수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의협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되어 올라온 의사들 상당수는 회부납부를 하지 않았다. 왜 회비납부도 않은 사람들을 위해 회원들이 낸 돈을 가지고 회의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회비 미납인 사람에 대한 지속적 불이익을 주어야만 개선의 여지가 그나마 보이리라. 회원명부에서 아주 없애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번 사태를 통해 보인 병원협회의 반응이다. 병협은 병원 경영자의 모임이다. 일반적으로 경영자의 책임은 종업원의 안전한 작업 환경을 책임져야 하고, 믿을 수 있는 안전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지금 병원 경영자들은 직원과 의사들에게 안전한 작업 공간을 확보해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 내 의문이다.

응급실 폭력 사건은 모두 병원에서 발생했다. 병원 경영자는 이런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못하도록 병원 내 안전 관리를 해야 한다. 나라에서 법을 개정하고, 대통령에게 청원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청원 경찰을 동원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선적으로 직원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 경영자의 책무가 아닌가? 병원의 직원이 안전해야 환자의 안전이 확보됨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의 사명감 높은 의사들은 자신의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료현장에서 밤낮없이 뛰어야 하는 것일까? 조금 위험해도 돈이 생기는 현장이니 참고 견디어 보라는 것인가? 그렇다고 얻어맞으며 환자를 돌볼 수는 없는 느릇이다. 결국 의사들도 경영자에게 안전한 근무환경 확보를 요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자신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하지 않는데, 뒤에서 의사협회 욕한다고 안전이 확보되겠는가? 정부의 반응? 요즘도 그딴 것을 믿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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