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현대 의사들이 선서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BC 5세기 때 만들어진 것과는 다르다. 고대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60여 권으로 만들어진 히포크라테스 전집에서 ‘선서’라는 부분을 말한다. 고대에 만들어진 ‘선서’를 1948년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의사회에서 일부 수정하고 현대화하여 사용하고 있다. 일명 ‘제네바 선서’라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의학 전문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 특성들이 고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문구에 깊이 배어 있다는 점이다.

의사는 전문가로서 누구보다도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자신들의 전문가적 명예를 중요시하는 문구가 선서의 첫 단락과 마지막 단락을 이루고 있다. “나는 의술의 신인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 휘기에이아, 파나케이아, 그리고 모든 남신과 여신의 이름으로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이 선서와 계약을 이행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제 내가 이 선서를 지키고 어기지 않는다면 내가 나의 삶과 나의 의술에 대해 모든 사람들로부터 영원한 명예를 얻게 하시고, 만약 내가 선서를 어기고 위증한다면 나에게 그 반대를 주소서.”

‘의사의 명예·자율규제 정신’ 강조

첫 단락에서 의사의 신화적 기원인 아폴론과 의학을 상징하는 뱀 지팡이로 알려진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 그리고 아스클레피우스의 두 딸 휘기에이아(건강의 여신), 파나케이아(치료의 여신)에게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선서와 계약을 이행할 것을 맹세하고 있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자신이 이런 선서를 지키지 못할 경우 불명예를 감수하겠다고 선서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첫 단락과 마지막 단락을 통해 전문가가 소중히 여겨야 할 명예(honor)와 전문가의 자율 규제(self- regulation)의 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스승과 제자 간의 계약, 의사와 의사 간의 계약이 쓰인 두 번째 단락에서는 전문직 윤리와 전문직 역량(competence)이 나타나 있다. “나는 이 의술을 가르쳐 준 스승을 부모처럼 여기고… 내 아들들과 스승의 아들들 그리고 의료 관습에 따라 선서하고 계약한 학생들에게만 교범과 강의와 다른 모든 가르침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하지 않겠습니다.” 전문가로서 동료 간에 지켜야 할 전문직 윤리가 잘 나타나 있다. 어떤 사람에게 의술이 교육돼야 하는지를 정해 놓고 있다. 전문직 역량을 갖춘 의사를 배출하는 면허제도의 원시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단락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를 돕기 위해 섭생법을 처방할 것이며 환자들을 위해(危害)나 비행(非行)으로부터 보호하겠습니다.” 에서는 전문직 윤리의 기본이 되는 악행 금지의 원칙(Help, or Do not harm)과 이타심(altruism)·책임감(accountability)의 특성을 볼 수 있다. 다섯 번째 단락 “나는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지켜 나가겠습니다.” 에서는 청렴성·진정성(integrity)과 명예(honor)에 관한 문구를 통해 개인윤리와 직업윤리 특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여섯 번째 단락은 “나는 칼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결석 환자도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맡기겠습니다.” 에서는 전문직이 갖추어야 할 탁월성(excellence)과 전문직의 책임감(accountability)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선의만 가지고 전문직의 역할을 할 수는 없듯이 전문지식과 술기를 가져야 한다는 표현이다.

의사가 지녀야 할 3요소 되새겨야

일곱 번째 단락에서는 이타심(altruism), 타인에 대한 존중(respect for others)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어느 집을 방문하든지 환자를 돕기 위해 갈 것이며 고의적인 비행과 상해를 삼가고, 특히 노예든 자유인이든 여자들이나 남자들과 성적 접촉을 삼가겠습니다.” 여덟 번째 단락에서는 “내가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또는 진료 과정 외에 그들의 삶에 관해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그것들을 비밀로 지키고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환자의 비밀(confidentiality)을 지키겠다는 책임감(accountability)과 타인에 대한 존중(respect for others)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의사가 전문직으로서 지녀야 할 3요소를 전문지식과 전문적인 술기 그리고 이를 진료에서 실현하는 의학 전문직업성이라고 한다. BC 5세기에 만들어진 선서이지만 그 내용을 통해 의사들이 가져야 할 정신과 전문직 자질들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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