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필자는 종로구에 살고 있어서 지난 수년간 광화문, 시청 앞 광장, 대한문 앞, 신문로 등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집회를 주말마다 보고 있다. 이런 집회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 열기를 느끼기도 하지만, 시위현장 곳곳에서 공권력 붕괴를 목격한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우리가 안전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했다.

사회 안전망이라는 말이 있다. 질병, 노령, 실업, 산업재해, 빈곤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현 정부는 저소득층 문제 해결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민들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안전 시스템이 있다고, 이것만으로는 안전한 사회를 유지할 수는 없다. 안전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공 공서비스인데, 수 년간 공권력 부재 현장을 자주 목격하면서 나를 범죄나 폭력에서 지켜 줄 안전 시스템이 있기는 한가하는 생각을 했는데, 올해는 더 자주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눈에 띄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여자소방관이 술 취한 주민을 구조하다 머리를 몇 대 맞은 후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고, 6월 말에는 익산의 응급실에서 의사가 취한 환자에게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건이 발생하더니, 급기야 7월에는 난동부리는 취한 주민을 제압하기 위해 출동한 경관이 칼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며칠 지나지도 않아 강릉에서 또 망치를 든 환자가 의사를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북 울진에서는 문신한 환자가 응급실서 의사를 위협했단다. 이런 일이 전국에서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사회는 늘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다.

공공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시도 때도 없는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한다. 이들의 노고를 존경하고, 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은 우리 국민들 몫이다. 상황이 그렇지 못하니, 중국 가서 공안에게 기자가 두드려 맞아도 큰 소리 못내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국내외에서 당하는 불법 폭력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공공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상황 발생 시 적극적인 대처를 안 한다면 피해 볼 사람이 누구인지 자명한데 가해자의 인권을 논하며 사회의 안전을 훼손하는 것은 문제다.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고, 홍보되지 않고 있어서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전체적인 공공부문에 대한 신뢰의 부족과 모두들 가만히 있으면 손해보고 산다는 느낌이 우리 사회에 상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악다구니를 쓰며 자기 권리를 주장해서 통하지 않으면 폭력으로 대처하겠다는 마음을 우리가 갖고 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병원 내 의료인 폭행에 대해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다’는 반응도 있다고 들었다. 맞을 짓을 했다고 학생을 때리는 선생님이 고발당하는 세상이다. 응급실 근무의사가 취한 환자가 휘두른 폭력으로 입원 치료를 받게 되면 바로 그 시간 이후 그 동네의 응급의료 서비스는 멈추는 것이다. 병원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것에 실망한 원장이 그 동 네의 유 일한 응 급실을 닫으려 했던 사건이 동두천에서 발생한지도 몇 년 되지 않았다. 다급할 때만 의료인의 윤리와 의무를 강조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시스템이 확고해져야 한다.

근무여건이 나쁜 응급실에 신변위협을 무릅쓰고 근무하겠다는 의사는 점차 줄어들 고 있다. 운영해야 적자인 응급실을 폭력 속에 방치하고 싶은 원장도 없을 것이다. 윤리와 법은 폭력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폭력의 방치는 또 다른 폭력을 부를 것이다. 법에 의한 엄정한 공권력 집행을 기대해 본다. 국회의원을 때리면 가해자가 입건되고, 경찰이나 소방관 의사를 때리고는 ‘오죽하면 맞았을까?’ ‘때릴 만하니까 때리지!’ 같은 소리를 들으며 가해자가 거리를 활보하는 사회가 정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의사들만 안전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의료인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환자의 안전을 도모하는 길이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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