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인구보건복지협회에 근무하다 보니 모임에서 “저출산 문제”가 화제로 자주 오른다. 그 원인과 해법이 다양하고도 흥미롭다.

저출산 원인으로, 청년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하거나 설혹 돈을 벌더라도 터무니없이 높은 전월세 가격,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결혼을 머뭇거리거나 아예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 기르기가 너무 힘들고, 더욱이 직장을 가진 엄마는 아기를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또는 육아휴직 후에 직장으로 복귀하는 것이 힘들어 임신과 출산을 포기한다.

그 해법도 가지각색이다. 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서 신혼부부에게 싸게 공급한다거나, 1억원 이상을 출산 장려금으로 지급하는 것부터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여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본을 마련한다는 등 백가쟁명식으로 제시된다.

필자는 저출산의 원인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결혼, 자녀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여성의 사회참여 욕구때문이다. 과거에는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이 제1의 덕목이었다. 게다가 한 집안의 제사 등 대소사를 준비하고 관리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었다. 이런 것이 여성에게는 일생 동안 족쇄가 되었다. 지금의 70대 이상 여성들이 이렇게 살았다. 아무리 재주가 많고 능력이 많아도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 두고 가정에 들어앉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려면 여간한 용기나 각오가 없으면 시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여성도 남성과 함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활동에 참여하여 그 존재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다.

결혼이나 출산은 이러한 가치실현에 장애물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여성에게 아기를 낳아 기르는 것을 전적으로 책임지운다. 교육에서부터 취업까지 엄마에게 의존한다. 오직하면 독박육아라는 말이 있을까. 출산휴가, 육아휴직 제도가 완비되어 있어도 불이익 받을 것을 걱정해야 한다. 직장에서의 승진에서 그 기간 동안의 공백이 불이익으로 작용될 것을 걱정한다.

저출산 극복의 근본은 양성평등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는 사회적인 의식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 의식이 변화되려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미투 운동이나 혜화역 시위는 아직도 여성이 느끼는 불평등의 장벽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관에 의한 성추행 사건을 두고 ‘여성들이 몸가짐을 잘하여야 한다’고 인식하는 상관이 있다.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사건의 사법 처리에 대하여 여성들은 남성에 비하여 불리하게 취급받는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양육, 가사분담, 일과 생활의 균형과 같은 정책과 구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 극복을 위하여 120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 부었으나 성과가 미미하다고 비판받는다. 얼마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의 출산율, 신생아 수를 목표로 한 저출산 대책은 자칫하면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단순히 출산율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아이와 아이를 키우는 2040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바로 아이돌보미 사업, 임금삭감 없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배우자 유급출산휴가 확대 등이다. 일하는 여성이 경력단절 없이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도록 사회가 좀 더 보살펴야 한다.

결혼, 출산, 자녀양육은 여성만의 책임이 아니다. 또한 가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공동 과제이다.

정부는 개인이 생애주기 과정들을 포기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 또한 여성이 할 일, 남성이 할 일과 같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도적인 마련과 양성평등 문화가 뿌리 내릴 때 저출산 극복에 한 걸음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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