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회-의사회, "자살을 수익모델로 이용 말라"…중단 촉구

[의학신문·일간보사=정윤식 기자] 신경정신과 의사들이 약사회 자살예방 시범사업이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훼손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며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사장 권준수)와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이사장 이상훈)는 최근 대한약사회가 보건복지부의 ‘2018년 민관자살예방사업’에 지원해 오는 7월부터 약국 250여 곳이 참여하는 빈곤계층 중심 노인자살예방사업을 진행한다고 최근 밝힌 것에 깊은 우려를 29일 표했다.

앞서 약사회는 약국에서 약학정보원이 만든 소위 ‘자살위험약물’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환자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자살위험약물을 복용하는 환자에게 자살위험을 고지하며 참여 활성화를 위해 협력 약국에 상담료 지급 등 인센티브까지 제공한다고 밝혔다.

신경정신의학회와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기본적으로 그 누구라도 자살 위험자를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치료기관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게이트키퍼’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과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 수면제로 음독자살을 기도하는 환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약사회가 직접 ‘게이트키퍼’ 교육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는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환영한다는 입장을 우선 전했다.

하지만 두 단체는 보건복지부가 채택한 대한약사회의 사업계획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부적절한 개입은 오히려 올바른 치료를 방해하게 된다는 지적을 건넨 것.

우선 이미 국내에서 55만 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해 묵묵히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게이트키퍼’의 역할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지적이다.

두 단체의 설명에 따르면 약사회 정책위원장은 약국자살예방사업을 ‘블루오션’이라고 표현하고 이에 대한 수가화를 추진하겠다고 최근 언론에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정책위원장은 이번 시범사업에서부터 참여하는 약국들에 상담료를 10회까지 지급하며 약 1억3000여만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했는데 이는 약사회가 자살이라는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진정성 없이 수익모델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의학회와 의사회의 설명이다.

두 단체는 “자살예방에 비전문가인 약사들이 상담료 수가의 책정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히 55만 게이트키퍼에 대한 모독”이라며 “근무시간에 교육을 받는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자살고위험군을 즉시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치료기관으로 연계하지 않고 10회까지 상담한다는 계획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두 번째로 이번 시범사업이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훼손할 것이므로 정부차원이 근거기반 자살예방정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을 이어갔다.

선진국에서 약사회가 자살예방에 참여하는 것은 게이트키퍼 교육을 받고 자살고위험군의 조기경고 증상을 발견하면 환자에게 자살예방상담전화, 치료기관 등 도움을 구할 정보를 알려주거나 주치의에게 연락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인데 이러한 형태의 협력이라면 의료인도 환영하나 과연 약사회의 사업이 ‘영구임대단지 빈곤층 노인자살예방사업’에 적합한지부터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

두 단체는 “병·의원을 방문하고 처방을 받기 위해 약국을 방문한 환자에게 개방된 공간에서 당신이 자살위험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고지하고 동의를 받아 상담을 하겠다는 것은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저해할 우려가 무척 크다”며 “환자의 임상적 진단과 상태에 따란 어떤 목적으로 약물을 처방했는지 의사의 의도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단순히 근거 없는 자살위험을 고지하는 것은 의사·환자관계를 해치고 환자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우울증 치료제인 항우울제마저 ‘자살위험약물’로 낙인찍어 경계해야 할 위험한 약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현 상황에서 환자를 위해 처방한 약물을 ‘자살위험약물’이라고 환자에게 고지하고 정부에 상담료를 청구하겠다는 약사회의 시범사업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의료인과 약사의 협력은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한 의학회와 의사회이다.

두 단체는 “현재 자살 예방을 위해 정신건강의학 분야는 물론 관련된 여러 전문 분야가 머리를 맞대고 최선을 다해 대책을 마련하고 실천하고 있다”며 “약사회의 이번 사업은 기존 전문가들의 헌신과 노고에 편승해 무분별하게 자신들의 영역 확장으로 보는 잘못된 의도를 넘어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자살 문제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면밀히 대책을 세워 민관이 협력해 실천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라며 “보건복지부는 의사·환자관계를 훼손하고 의사·약사 긍정적 협력을 방해하는 무모한 시범사업을 즉시 철회하고 근거기반의 자살예방정책 추진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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