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문재인 케어로 무장한 건강보험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있는 문재인 케어이지만, 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또한 변신해야 한다는 점을 정부 또한 잘 알고 있다. 본지에서는 정부가 건강보험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부분들, 특히 ‘심사체계 개편’과 ‘커뮤니티케어’ 두 항목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달라지는 심사체계, 가격 적정성에서 환자 적정성으로

현재의 심사체계 시스템과 관련, 보건의료계가 정부를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 중심’이 아닌 ‘재정 중심적 접근’에 함몰돼있다는 점이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 의료계에서는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급여기준에 따라 환자 치료를 제한 받는 상황에 대해 ‘심평의학’이라 칭하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서도 이 점을 인식, 가격 적정성에서 환자 적정성으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 5월 복지부가 구성한 심사체계 개편 TF는 의료계의 심사체계 개선 요구를 고려, 개편안을 만들고 있다. 이 가운데 환자 적정성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재정만을 생각하는 건강보험 재정관리자의 관점에서 탈피, 환자 건강에 도움이 됐는가를 중심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심사체계 개편 TF 팀장은 “심사체계 개편이라는 미션은 정말 넓은 영역을 건드려야 하는, 어렵고 복잡한 작업”이라고 전제한 후 “많은 의견과 자료가 오가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방향성, 즉 ‘환자에게 얼마나 적정한지를’ 심사하는 체계로 만들겠다는 점에선 다들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복지부가 비용효과성을 전면 부인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최근 복지부가 행정예고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령안은 별표1 1조 다 항목의 ‘요양급여는 경제적으로 비용효과적인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를 삭제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이는 복지부가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비용효과성을 요양급여 심사기준 중 단일 원칙으로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고,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 본문에 비용효과성을 포함시켜 여러 가치들과 함께 급여 기준을 살펴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복지부가 이른바 ‘심평의학’을 탈피하기 위해 꺼내든 방안은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려면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에서 제시하는 ‘가치 기반 의료’부터 확인해야 한다.

평가와 심사의 결합, ‘가치 기반 의료시스템’

보사연 강희정 연구위원은 ‘2017 한국 의료 질 보고서- 한국 의료시스템의 혁신 성과 평가(Ⅱ)’를 통해 가치기반 의료시스템은 공급자 주도의 서비스량 증가가 아닌 환자중심에서 효율적인 방식으로 의료의 질과 건강결과를 향상시킬 때 더 많은 이익을 얻도록 새로운 가치사슬(value chain)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는 공급자가 수익을 얻는 상황, 즉 요양급여 획득 상황이 의료인의 행위량을 기반으로 책정하는 것이 아닌 환자가 완치됐는가, 또는 건강해졌는가 등의 결과값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행위량 측정 비중이 줄어들면서 당연히 원가 개념 또한 그 중요성이 줄어들게 된다. 이에 비해 환자의 이익, 즉 ‘얼마나 건강해졌는가’에 대한 가치 측정 방식은 더욱 세밀해지고 견고해지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복지부는 심사와 평가가 이분화돼있는 상황에 대해 통합을 고려하고 있다. 환자가 얼마나 건강해졌는지를 알아보려면 현재 심사 파트에 들어오는 자료의 대부분인 ‘비용 자료’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각각의 심평원 지원이 진행하고 있는 지표연동자율개선제(내원일수 관련)을 넘어서는 각각의 요양기관에 대한 의료 질 관련 자료들이 필요한데, 복지부는 현재 심평원에서 각종 질환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적정성 평가를 심사와 연동시키는 방안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심사와 평가를 연계, 혹은 통합시켜 건당 심사가 아닌 패턴을 보는 경향 심사 형태를 추구하게 된다. 경향 심사 결과는 향후 유사한 패턴에서의 기준으로 활용돼 각각의 심평원 지원이 ‘고무줄 심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같은 복지부의 구상은 단순히 일부 질환‧일부 요양기관에서만 해당되던 각종 적정성 평가의 강화로 이어진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관리하는 각종 기관 지표와 보건의료연구원에서 생성되는 각종 질환 치료 기술 근거, 심평원의 청구경향 데이터와 적정성 평가 관리가 결합돼 기관평가와 요양급여 지불과의 상관관계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아직 관리 영역에 들어와있지 않은 수많은 의학적 비급여 또한 ‘예비급여’의 형태로 관리되는 수순을 겪게 된다.

심사체계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의 건 단위로 행위별 심사가 계속 유지되기는 어려우며, 결국 경향 심사 구조로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료: 강희정(2015), 환자중심 가치기반 의료시스템 구축을 위한 공급자 지불방식 개편 방향, 보건복지포럼 12,31-43 그림 4 저자 수정. 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연구보고서 등을 통해 건강보험 지불제도의 개혁 방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복지부는 지불제도 개편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한 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의 숙제는? ‘환자 중심 근거 창출 급선무’

복지부가 심사와 평가를 결합시킨 새로운 심사체계를 구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계가 당면한 숙제는 ‘과연 얼마나 환자 중심적으로 근거를 창출시킬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다. 향후 가치 기반으로 바뀌게 되는 심사체계는 단순히 ‘이 의료행위가 환자에게 좋습니다’를 설명하기 위해 객관화된 데이터들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만한 지표들을 가지고 수많은 당사자들과 논의를 해야 한다.

이미 비용효과성 분석에 잔뼈가 굵은 복지부는 신의료기술과 예비급여 의료기술평가, 심지어 가치기반 의료기술평가 등을 통해 환자 중심적 가치에 대해 고민을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실행 계획에 대해 어느 정도 구체화시킨 상태다. 이에 대항해야 하는 의료계의 근거 창출 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의사 출신의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분명한 점은 의사들이 관행적으로 해왔던 행위들에 대해 이제는 ‘과연 이 행위가 얼마나 환자에게 가치가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특히 수술 전 항생제 처방 등과 관련, 근거가 불충분한 의료 여건을 심사‧평가 자리에 내세우게 된다면 필패하거나 관련된 의료 지표들에 대해 메스가 가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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