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2017년 상반기까지 종합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으로 봉직하다가 나이가 칠십대에 접어들어 그만두고, 요양병원에서 일반의(GP)로 근무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현재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한 26개 전문 과목의 전문의가 있다. 그런데 현재 요양병원의 운영 시스템 하에서는 8개과 유관전문의들만이 전문의로 인정을 받고, 나머지 18개과의 전문의들은 일반의로 강등되어 푸대접을 받고 근무하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의사 차별대우임이 확실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2010년 요양병원의 질을 높인다는 명목하에, 그 당시 요양병원과 관련된 일부 의사들이, 26개 과목 전문의협회나 단체를 초청해 공청회나 토론회를 통한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8개과만 유관전문의(내과, 가정의학과, 신경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로 선정해 놓고, 그들만을 전문의로 우대하는 모순된 제도를 보건복지부에 건의해서 지금까지 시행해 오고 있다. 이는 나머지 18개과 전문의들을 차별대우하는 21세기 현대판 골품제도이므로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

아시다시피 이들 8개과 유관전문의들을 요양병원에서 50%이상 채용하면, 입원환자 1명당 입원료에 20%의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시행되어 9년째 이르고 있다. 이로 인해 8개과 유관전문들은 일반의로 근무하는 18개과 전문의보다 여러 면에서 상당한 인센티브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나머지 18개과 전문의들은 요양병원에서만 8개과가 아니라는 악법 하나 때문에, 헌법에 보장된 행동권과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18개과 전문의들은 졸지에 일반의가 되어 요양병원의 채용기회의 제한이나 박탈을 당하고 있으며, 설령 채용되더라도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와 불리한 조건하에서 힘들게 근무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도는 당장 폐지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13만명 의사들의 권익과 고충을 대변하는 대한 의협에서 발 벗고 나서서 잘못된 제도를 고치는데, 총력을 기울여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이제부터 요양병원에서 입원환자에게 20% 가산점을 주는 8개과 유관전문의 가산점 제도의 모순점과 문제점들을 파헤쳐보고자 한다.

첫째: 8개과 유관전문의를 50%이상 채용하면, 입원환자 1명당 입원료에 20%의 가산점 을 주는 제도가 큰 문제다. 이 제도는 8개과 유관전문의와 요양병원에게 이익만 주는 정말로 잘못된 독소조항이므로 당장 없어져야 마땅하다.

요양병원에서 8개과 유관전문의가 그들의 전문성을 100% 충분히 발휘하고 있을까?

한마디로 ‘NO’다. 그들이 수술을 잘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시설이나 인력이 없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수술을 요하는 응급환자는 후송 보내면 되므로 다른 전문의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둘째: 그렇다면 요양병원에서는 8개과 유관전문의만 있으면 만사형통되는 것처럼 모든 분야의 질병이 전부 해결될까? 이 역시 아니다. 요양병원에는 피부병, 백내장, 녹내장, 청력장애, 배뇨장애, 각종 알레르기 질병, x-ray 판독 등 26개과의 모든 전문의가 모두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이제부터 요양병원에는 8개과 유관전문의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26개 과목의 모든 전문의들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셋째: 요양병원의 특성상 종합병원처럼 환자의 증상에 맞게 진료과를 선택하는 시스템도 아니며, 환자를 맡은 주치의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의사의 전공과목과는 별로 상관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전체의 환자를 도맡아 진료하고 치료하면 된다. 8개과 유관전문의들이 자기 전공과목 이외의 다른 진료분야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외과 의사들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나, 제활의학과 의사, 신경과의사가 고혈압이나 당뇨병이나 고지혈증과 같은 내과 질병을 얼마나 치료를 해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넷째: 2015년부터 전국 요양병원의 97%이상이 입원환자의 입원료에 20%의 가산점을 받고 있다. 입원료에 가산점을 받는 이 제도는 현재 거의 평준화가 되어 있어, 보건복지부와 심평원도 이미 그 취지와 효과를 상실했다고 알고 있으므로, 8개과 유관전문의 가산점제도는 당장 폐지되어야 옳다고 본다.

다섯째: 인센티브를 받고 있는 8개과가 9년째 누려온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을 것이고, 가산점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요양병원들도 현 재도를 쉽게 포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미 곪고 썩은 부위를 수술안하면 새살이 차올라 올수 없듯이, 악법으로 9년째 시행해 오는 현행제도는 많은 아픔이 따르겠지만 대수술을 해서라도 정상궤도에 안착시켜야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요양병원 수가 개선안”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8개과 유관전문의의 수가 가산이 실절적인 요양병원의 질적 향상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발표를 해서 설득력을 얻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2015년 요양병원에 입원한 97%이상의 환자들이 입원중에 가산점을 받고 있어서 평준화가 거의 다 되어, 그 본래의 취지와 효과를 이미 상실했다고 보건복지부가 발표한바 있다.

몇 달전에 “ 대한 노인요양병원 협회”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2018년 8월부터는 8개과 유관전문의 제도와 가산점 제도가 폐지되는 것으로 알고, 요양병원들은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지금 당장 8개과 유관전문의 제도와 가산점 제도는 당연히 철폐되어야 한다.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의 입원을 금지하고 있는 요양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유관전문의로 지정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모순된 정책이므로, 8개과와 더불어 당장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노인들의 질환을 이해하고 노인들의 질병에 대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실력을 갖춘 모든 의사들이 요양병원에서 차별 없이 의술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노인과 전문의가 한명도 없는 현재의 요양병원 체계 하에서는 26개 과목의 모든 전문의들은 그 누구나 일반의로 근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웃 일본과 대만에는 있지만, 대한민국엔 아직까지 노인과 전문의가 없다는 것을 의사들과 보건복지부에서는 아는 사실이다. 만시지탄이지만 보건복지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잘못된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제대로 고쳐서 바로 잡아줘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김고창
원광효도 요양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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