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현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의학신문·일간보사] 예비급여제도가 과연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시킬 수 있을까?

문재인 케어의 핵심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예비급여다. 예비급여는 기존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 하면서 생기는 보험 재정의 문제를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활용하여 돌파하겠다는 보건 당국의 의지를 보여준다. 90%에 육박하는 본인부담금을 내게 해서라도 비급여 항목들을 급여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비급여제도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정책에서 볼 때, 정부는 비급여의 급여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 입장에서 예비급여제도는 과연 공공의 이익을 담보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첫째, 예비급여 제도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OECD 에서 말하는 보장성과 국내에서 언급하는 보장성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지적한 바 있다. OECD 의 보장성이 전체 의료재원 가운데 국가 기여도를 따지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보장성의 개념은 총 의료비 지출 가운데 환자의 본인 부담금의 정도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예비급여제도가 확대되면 어떻게 될까? 제도 도입 이전에 불명확하게 추산되던 비급여 항목이 급여 항목으로 잡히면서 보다 명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의료 관리 계획 수립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은 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본인 부담금 지출 측면에서 공단의 통계에 포함되는 부분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본인 부담금 지출이 늘어난 것으로 추산되어 대단히 낮아질 수도 있다. 이 경우 70%를 넘지 못했던 보장성 수치는 올라가기는커녕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예비급여 항목들의 급여화 압박이 커지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둘째, 비급여의 급여화, 예비급여의 실제급여화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은 급격히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재정 건전성 문제가 주된 사회적 의제로 격상될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진료 건수의 제한 등이 이뤄질 것이다. 진료 횟수나 급여 빈도 제한으로 인해 의료계는 소위 삭감 압박을 받게 될 것이나, 실제 피해는 즉각적인 진료나 처방을 원하는 환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문재인 케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제도의 명암이 엇갈릴 것이다.

단순히 비급여의 급여화가 목표라면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릴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목표라면 물음표다.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제도를 원한다면 속도 조절이 필요할 것이다.

공공의 이익이 목표라면 지금이라도 건강보험 재정의 문제와 진료 건수 제한에 대한 사회적 숙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예비급여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문재인 케어의 핵심 문제 중 하나이다. 급여화의 전 단계로서의 예비급여를 둔다는 것이 정책 입안자에게는 신의 한 수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백년지대계를 세우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문재인 케어의 실제 목표와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 공급자와 가입자를 설득해나갈 필요가 있다. 향후 보험료 인상이나 지불제도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문재인 케어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종종 듣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 밀어붙이기 방식으로는 이내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단순히 “급여는 선, 비급여는 악”과 같은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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