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선진국, 시장 투명화 ‘선샤인 액트’ 시행

강한철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최규원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의학신문·일간보사] 제약기업들(의약품 도매상을 포함한 의약품공급자들)은 2018년 1월 1일부터 개정 약사법에 따라 의료인에게 제공한 경제적 이익 등 내역에 관한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다.

위 약사법 개정 당시부터 의료 및 제약업계 내외에서 다양한 우려와 기대가 지속되어 왔으나, 결과적으로 제약회사/보건의료전문가 간 거래내역의 투명한 공개라는 세계적인 추세에 부합하는 제도가 도입, 시행되게 되었다는 점은 기업준법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세계적인 추세를 살피면,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여러 제약선진국들에서 소위 ‘선샤인 액트(Sunshine Act)’라는 이름으로 의약품 시장 투명화 제도가 시행되고 있고, EU 33개국에서도 2016년 6월 30일부터 EFPIA Code(The EFPIA Code on the Disclosure of Transfers of Value from Pharmaceutical Companies to Healthcare Professionals and Healthcare Organizations)에 기초한 경제적 이익 등 내역 공개제도가 도입된 상황이다.

특히, 프랑스, 덴마크, 포르투갈, 루마니아 등에서는 위와 같은 내역의 대중공개가 의무화되거나 이를 의무화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 역시 투명성 제고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추어 그 동향에 부합하는 제도를 채택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제약기업은 지출보고서를 작성하고 관련 장부 및 근거 자료를 5년간 보관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요구하는 경우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제출하여야 하고, 의료인이 요청하는 경우 본인에 대한 경제적 이익 등의 제공 내역을 확인할 법적 의무를 지게 된다.

이러한 제도적 변경은 제약업계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리라 기대된다.

의료인에게 제공되는 경제적 이익 등에 관한 정보가, 그러한 이익 등을 제공하는 자(제약기업), 제공받는 자(의료인), 나아가 규제당국(보건복지부)에 공개되고 교차 검증될 수 있게 됨으로써, 소위 불법 리베이트라는 독버섯이 자라날 수 있는 은밀하고 어두운 영역은 크게 축소되게 되었다.

제약업계 체질개선 촉진 가능성

지금까지의 규제가 적발된 리베이트에 대한 처벌에 중점을 둔 사후적인 것이었다면, 지출보고서 제도는 제약업계의 정보관리와 자정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사전적·예방적인 것으로서 업계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촉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그러한 측면에서 제약기업 입장에서 지출보고서 작성 제도는 위기이자 큰 기회이다. 제도 시행 초기의 어려움과 혼란은 이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여러 제약기업들은 의무 이행을 위한 시스템 도입 과정에서 회사 내외에서 많은 반발에 부딪치거나, 때로는 과거 이루어졌던 비윤리적 행위를 재차 발견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외부적으로도 규제기관 또는 의료인의 요구에 대해 어느 범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끊임없는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 예컨대 일부 의료인들이 제약기업에 대하여 자신과 관련한 일체의 보고를 하지 말도록 요구하거나, 정확한 정보에 대해서도 수정이나 삭제를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제약기업으로서 그러한 부당한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지출보고서 제도에 대한 준비와 대처에 따라 제약기업 사이의 사회적 평가와 위험성 관리 측면에서 적잖이 명암이 엇갈리게 될 것이다. 지출보고서 제도의 시행으로 인해 제약기업들은 교차검증의 가능성을 가진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준비하고 이를 의료인과 규제당국에 제공하여야 할 책임을 안게 되었다.

이 자료를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검토·검증하고, 보관하며, 규제기관 및 의료인의 요구에 맞추어 대응할 것인지에 관하여 제약기업들이 숙고하고 노력할 수록, 그 자체로 컴플라이언스 준수를 위한 관리·감독 의무의 충실한 이행에 해당함은 물론, 향후 영업활동을 투명하고 일관되게 수행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지출보고서 작성 제도 ‘위기이자 큰 기회다’

결국 지출보고서 제도로 인하여 불법적인 리베이트라는 구태에 의존하여 온 기업과 준법·윤리경영을 하면서 기술력과 신뢰도로 승부하는 기업 사이의 격차가 서서히 나타날 것으로 본다. 특히 전자는 규제당국의 지속적인 감시와 처벌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

일부에서는 지출보고서의 미작성 또는 허위작성에 따른 벌금액이 높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그 의미를 폄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제약기업들은 이러한 벌금형은 지출보고서 미비가 가져올 수 있는 후폭풍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출보고서의 미작성, 허위작성 또는 제출 거부가 확인되는 경우, 해당 제약기업은 즉시 위법한 영업활동이 관행으로 수행되어 온 것은 아닌지 의심받게 될 것이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우리는 불법 리베이트가 의심되는 경우 주무관청인 보건복지부는 물론, 경찰·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및 세무당국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조사와 제재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여러 차례 목도해 왔다. 직접적인 제재로 인한 회사와 경영진의 피해는 물론, 기업 이미지의 훼손 및 고객과의 관계 악화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지출보고서의 철저한 작성 및 보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의료인 역시 지출보고서 작성 제도의 시행으로 인하여 제약기업과의 관계 및 법령 준수 측면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의료인은 그동안 제약기업과 교류하면서 경제적 이익 등을 제공받는 소위 “갑” 의 입장으로 이해되어 왔으면서도, 정작 불법 리베이트로 조사를 받는 경우 자신을 지킬 무기가 마땅치 않은 취약한 입장이기도 했다.

제약기업들은 적어도 내부적으로 관리되는 자료와 교신을 근거로 하여 혐의를 반박해볼 수 있는 반면, 현실적으로 이러한 자료를 구비하기 어려운 의료인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막연한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반론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 왕왕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의료인·기업 스스로 방어 가능

그러나 지출보고서 작성 제도로 인하여 의료인들은 자신에게 제공된 경제적 이익 등의 내역을 정확히 확인하고 사안에 따라 수정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고, 제약기업과의 교류 및 경제적 이익 등의 제공과 관련한 불필요한 오해, 특히 면허정지/취소와 형사처벌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기초적인 수단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의료인 입장에서는 제약기업과의 교류가 관련 법령상 허용된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각별히 유의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제약기업 영업사원과의 비밀스런 협상을 통해 묻어둘 수 있었던 행위들이, 지출보고서와 근거자료의 보관이 법령상 의무가 된 상황에서는 더 이상 숨기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적법한 테두리 안에서 제약기업과 교류하는 의료인의 경우, 오랜 기간 제약기업에 의해 작성되고 보관되는 지출보고서는 그 자체로 해당 의료인의 준법의식과 윤리수준을 보여주는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도가 시행, 정착되고 지출보고서가 축적됨에 따라, 의료인들의 이러한 차이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의료인들 사이에 “지출보고서로도 잡히지 않는 음성화된 리베이트는 괜찮다”는 식으로 쉽게 인식하는 사례를 보게 되는데, 규제기관이 바로 그러한 음성적 비위행위에 대해서 적발과 처벌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임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설명 드린 차별화 경향에 비추어 음성적 리베이트를 수령한 의료인에 대한 사회적 비난가능성과 형사 처벌수위는 한층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적법한 영업수단은 원칙적으로 지출보고가 되어야 함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괜찮다. 현금은 받아도 문제없다. 지출보고가 되지 않는 비밀스런 방식이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영업사원이 있다면, 이는 자격과 면허가 생명인 의료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악마의 속삭임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출보고서제도는 그 모델이 된 미국의 선샤인 액트(Sunshine Act)와 같이 대중 공개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고 그것이 주무관청의 궁극적인 의도라고 판단된다. 이는 정보의 투명화·개방화라는 제도의 취지상 자연스런 방향일 것이고, 글로벌 트렌드이기도 하다. 지출보고서 제도가 궁극적인 공개제도 시행을 위한 첫 단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언젠가는 대중 공개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전이라도 언론사, 기자, 시민단체, NGO, 환자단체, 국회 관련 위원회 등의 보건복지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및 국민들에 대한 정보제공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상 이상으로 단시간 내에 대중공개에 준하는 실질적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십여 년간 제약 및 의료계는 관련 규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불법 리베이트의 근절과 준법/윤리경영의 정착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자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지출보고서 제도라는 또 하나의 큰 변화의 물결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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