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진료여건 선진국보다 매우 열악

의료정책 담당자 ‘수가 올리자는 거냐’ 경청 안해
3차 의료기관간 진료체계·치료성적 격차 커 문제
중환자진료 투자·절차 등 의·정·국민 합의 있어야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여러 해 전에 중환자진료체제와 수가를 개선하기 위하여 대한중환자의학회 임원들이 정부의 보건의료 관련 관료들을 만나는 자리들이 여러 차례있었다.

그 중 한 모임에서 관료 한 분이 전 국민의 이목을 끄는 초유의 불행한 사례가 있어야 정부가 중환자실 문제점들을 제대로 검토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중환자진료 환경 속에서 한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불행한 의료 사건이 발생하였다.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의료인들은 담당의료인들의 구속에 이른이 사건의 발생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보건복지부를 비롯한 보건당국 관료들은 우리나라 중환자진료의 문제점들을이제는제대로 고민해 볼까?

중환자실은 중환자의 나이에 상관 없이 삶의 마지막 비상구이다. 중환자들은 질병이나 진단과 치료과정에서 동반되는 신체 스트레스를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환자진료는 전문가들의 협의를 바탕으로 신속하면서도 보다 정확한 진료가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그 과정이 보다 안전해야 한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지난 20년 동안 여러 차례의 국회공청회나 기사 투고 등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중환자실은 안전하지 않다’고 보건당국과 의료인과 시민들에게 호소하여 왔었다.

이 지면에 또 다시 국내 중환자진료 여건이 선진국들의 진료 여건에 비하여 매우 열악하며 여러 질병들의 치료 성적도 선진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통계 수치로 제시하는 것이 진부할 정도다.

의료정책담당자는 “결국 수가 올려 달라는 것 아니냐”며 전문학회의 읍소를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다. 그 사이 대한중환자의학회와 병원중환자간호사회의 노력으로 2008년 중환자의학세부 전문의 제도의 시작, 중환자실 병상 등급의 세분화와 수가의 일부 변화가 있었다. 그럼에도 원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가와 중환자진료전문의료인의 부족 및 중증환자의 증가 등으로 우리나라 중환자실은 여전히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 지 모르는 상태이다.

이번 특집의 주제는 국내 중환자의학의 선진화이다. 선진화의 기준은 무엇이며, 어디가 선진화의 모범인가에 대해서는 의료인들이나 보건의료 당국 조차 그 분야의 전문가와 그렇지 않은 경우 생각이 다를 것인데, 환자 당사자나 시민들의 생각은 더 크게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중환자진료의 선진화를 통하여 중환자들이 자신의 품위를 지키며 보다 안전하게 치료 받을 수 있고 회복 가능한 상태는 회복될 수 있는 중환자진료의 핵심 목표는 모두 기대할 것이다. 이러한 목표들은 이렇게 하겠다는 선언이나 약속으로 달성할 수 없다. 그 목표에 도달할 장기 계획과 실행에 필요한 투자 그리고 그 투자 비용과 절차에 대한 의료계와 보건당국 및 국민들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중환자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긴 수련 시간을 요하며, 또한 젊은 의료인들이 그 중환자전문의료인으로 성장하고 싶은 동기가 부여되어야 하므로 단순히 진료 수가를 충분히 보장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는 전문의료인들과 보건당국이 협의하며 지속적으로 중환자진료환경을 개선하고 더 많은 젊은 중환자의료인들이 중환자실을 담당할 때 비로소 치료성적의 개선이나 중환자들의 안전과 존엄이 나아 질 것이다.

국내 중환자진료의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3차의료기관의 중환자실에서 조차 병원간 진료체계와 치료 성적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병원을 책임지고 있는 운영당국자들의 중환자진료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

선진화된 중환자진료체계를 갖추려면 당장 어떤 문제점부터 해결해야 할까? 우선 허술한 국내 중환자실관련 법부터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3월에 제시한 중환자실 관련 시행령(중환자실의 시설 규격 시행규칙 제 28조 8)에는 중환자인력 기준에서 성인중환자실은 “전담전문의를 둘 수 있다”로 하였고, 그 전담전문의의 자격 규정조차 두지 않았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여러 해 전에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국가인권위원회에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9조 제1호 인권에 관한 법령에 보건복지부의 중환자 진료관련 시행령이 국민의 행복권에 반한다고 질의하였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중환자실은 중환자 관리에 숙련된 의료전문가와 첨단의료시설과 장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고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며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서 유래하는 건강권 내지는 생명권을 결과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회신을 하였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대한중환자의학회의 지속적인 이 규정의 문제점 지적에 응하지 않고 있다가 2017년 2월 10일에야 상급종합병원의 지정 및 평가규정(보건복지부고시 제 2017-22호)에 3차의료기관의 성인중환자실에는 중환자실 담당전문의가 있어야 한다는 수정된 시행규칙을 발표하였다.

허술한 중환자실 관련 법령 정비 급선무
9등급으로 세분화된 중환자실 수가 적자 폭 확대
감시장치·인공호흡기 등 필수 치료장비 확보해야
보건당국 의료현장 경고신호 진지하게 경청해야

법의 위력은 커서 전담전문의를 갖추지 못하였던 3차의료기관들이 앞 다투어 그 요건을 맞추었으나 이 시행규칙에도 담당전문의의 자격규정이나 한 명의 전담전문의가 몇 명의 환자 이상은 볼 수 없다는 상한선을 두지 않음으로써 막상 투입된 전담전문의들이 진료의 한계상황을 극복하지 못하여 사직하는 경우들이 생기고 있다.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수가 때문으로 중환자를 많이 볼수록 병원의 적자 폭이 커지는 것이 실제 상황이며, 이는 각 병원의 중환자 기피 현상으로 나타난다. 현행 9등급으로 세분화된 종합전문병원의 중환자실 현행수가에서도 이러한 모순이 뚜렷이 나타나는데 등급 간의 차등수가 폭이 작아서 상위등급으로 상향 조정할수록 적자의 폭이 커지게 되어 있다. 이로서 많은 3차의료기관에서 한 명의 중환자실 간호사가 3명 이상의 중환자 진료를 담당하게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한 명의 간호사가 2명이내의 환자를 보아야 중환자실로 인정하고 있다. 중환자 진료에 필요한 필수 감시장치나 인공호흡기와 같은 필수 치료장비 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중환자실도 많은 것 또한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한다.

2008년 아시아 중환자실의 중증 패혈증에 관한 다국적 조사연구에서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가 환자 병상 당 한 대의 인공호흡기를갖추고 있었던 반면, 조사에 참여한 국내 대학병원들의 경우 46.7%의 중환자실만이 그러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호전되지 않았을 것이다.가장 최근의 대한중환자의학회에서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병상 당 인공호흡기 구비 비율이 62.2%에 불과했다(대한중환자의학회 백서, 2015년).

응급실과 중환자진료는 공공의료로 간주하여 보건당국이 필수 인력 및 장비 요건을 지금보다 강화하고 지원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적 요소와 장비 등이 갖추어진 중환자실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 표준진료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다.

그 표준진료를 통하여 불필요한 검사나 약물 사용을 줄이고 인공호흡기와 같은 특수 진료 장비를 보다 효율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환자의 중환자실 입실 기간도 줄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중환자관련 진료비의 낭비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중환자실에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하여 iPad와 같은 소통 기기를 사용하거나 개와 같은 애완동물과 함께 있게 하는 등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환자의 진료에 가족들이 적극 참여하는 “familycentered ICU”의 구현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생사의 기로에 있는 상황에서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위엄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조기에 재활치료를 시작함으로써 치료성적을 향상시키고 중환자실에서 퇴실 후 건강 상태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의료인들이 임종환자 가족들과의 충분한 소통을 통하여 환자 사망 후 겪는환자 가족들의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내 중환자실 일부에서는 이미 이런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 현재 진료여건 하에서 그런 수준까지 노력한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한 국가의 특정 의료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의료상황이 언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지 모를 수준이라고 보건당국에 경고를 끊임 없이 보내는데 정책 담당관료들은 왜 불행한 사태라도 발생해야 한번쯤 돌아보는 것일까?

중환자의학회 춘계학술대회 장면.

이번 신생아중환자실에서의 불행한 사태에 대한 당국의 반응을 되돌아 보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사태가 주사제 분주 위법 관행이 원인이라고 발표하였다. 보건복지부는 과거 심평원이 실 사용분 이외 청구분에 대하여 삭감을 함으로써 의료현장에서 분할 투여의 관행이 생겼던 사실에 대해서는 사과도 없이 2018년 1월 23일에 신생아중환자실에 대한 감시를 대폭 강화하고 감염관리 수가체계를 보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이번에도 사태의 저변에 깔린 국내 중환자진료체제의 근본 문제점들은 보지 않고 “의료기관의 감염관리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보건 당국은 금년 4월 2일 신생아중환자의학회가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의 중요한 점으로 제시하였던 “중환자전문의료인의 부족과 과다한 진료업무 부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왜 젊은 의료인들이 중환자의학전문의료인 수련을 회피하는지, 열정을 가지고 중환자진료를 시작한 젊은 의료인들이 왜 중환자실을 떠나는 지에 대한 분석을 하지 않고 이 불행한 사태의 원인을 의료인들의 잘못된 관행과 관리감독 및 감염관리 부실로 종결해서는 또 다른 유사한 불행한 사례들의 발생을 막지 못할 것이며, 우리 중환자실의 선진화는 요원한 바람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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