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보건의료 협력 법적 근거 마련돼야

건보공단 통일 건강보장제도 모델 수립 주도적 역할
남북 광범위 데이터 기반 재원·자격·사후관리 재설정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 위한 민·관 공동협의체 구성도

이정면
국민건강보험공단 부연구위원

[의학신문·일간보사]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의 기조를 ‘한반도 통일’에서 항구적 ‘한반도 평화체계’의 구축으로 전환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핵 동결에서 완전한 핵 폐기로 이어지는 포괄적 비핵화 협상방안을 마련하고, 대북제재 상황을 감안하면서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등 남북관계 차원의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는 동시에, 2017년 중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고 비핵화 진전에 따라 평화체제 협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은 판문점에서 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오는 6월 12일에는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만약, 북한의 핵폐기 선언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더불어 북한의 급진적 개방이 시작된다면, 사회 전 분야에 있어서 남북한 간 물적·인적교류는 급격히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남북한 지역의 의료 이용에 관한 문제가 이슈화될 가능성이 높다. 즉, 북한을 방문한 남한 사람과 남한을 방문한 북한 사람이 양국에 체류하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질병 및 상해치료를 위한 병원이용의 문제가 제도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무상치료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북한의 의료보장체계와 국민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의료급여로 구성된 우리나라 건강보장체계의 이질적 간극을 좁혀 통일된 건강보장제도를 구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2019년부터 시행될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 향후 5년 간 통일을 대비한 건강보장체계 구축에 관한 로드맵이 일부 제시되고, 연도별 시행계획이 수립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은 국민건강보험 및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보험자로서 남북한 통일을 대비하여 어떤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인가?

건보공단은 수십 년 간 축적된 건강보장제도 운영의 노하우와 전 국민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3세계 건강보험제도 컨설팅 및 국제협력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통일 건강보장제도 모델을 수립하기 위한 과정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건보공단은 북한 보건의료 및 건강보장 관련 데이터를 조사·수집·축적해 가야 한다. 그동안 탈북자를 중심으로 매우 제한적인 수준의 정보를 수집해왔다면, 향후 추진될 다방면의 남북한 교류협력 과정에서 확보할 수 있는 자격·부과·급여·수가 등에 관한 북한의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확보된 정보 및 자료를 활용한 연구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해가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통일한반도 시대 경제활성화를 위한 산학연혁신선도산업로드맵구축정책포럼 후 기념촬영 전경.

북한은 남한과 비교해볼 때 경제적 취약계층의 비중이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소득 및 재산에 따른 가입자유형 연구를 위해 북한 주민의 직업유형과 소득자료를 조사·수집할 필요가 있다. 추후 통일이 단계적으로 추진되면 초창기에는 북한 주민의 미약한 보험료 부담능력을 고려하여 접근해야 할 것이다. 또 통일 이후 보험급여 및 수가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의 의료기관, 의료장비, 의료인력 현황뿐만 아니라 진료목록 및 수가체계 등에 관한 세부자료가 파악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남북한이 보유한 데이터를 상호 개방·공유·연계하여 단일한 빅데이터 체계를 구축하고 공동의 연구개발 사업을 활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일 건강보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향후 재원, 자격, 부과·징수, 보험급여, 수가·지불, 청구·심사·평가, 사후관리 등 모든 것이 전면 재검토 및 재설정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건보공단은 종합병원인 ‘일산병원’과 노인요양시설인 ‘서울요양원’을 설립·운영하며, 건강보험 및 노인장기요양보험에 관한 각종 시범사업을 우선적으로 적용·실시하여 왔다. 이처럼 보험자병원 및 보험자시설을 설립·운영하며 축적해 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북한에도 남북한의 공동 의료진 및 운영진으로 구성된 지역거점병원 및 요양시설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의료보장체계 및 보건의료실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북한 주민의 질병 및 건강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구역이 개발된다면, 우선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남북한의 노동자를 진료할 수 있는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을 설립·운영하고, 차츰 북한 내 거점지역으로 확대해 가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2004년부터 대학병원(서울의대·서울대어린이병원)과 통일운동단체를 중심으로 북한에 현대식 어린이병원 설립을 지원한 민간의 보건의료분야 교류협력사례와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북한 지역의 보다 다양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병원급 의료기관과 장기요양시설의 설립을 지원하여 공동 운영하는 수준으로까지의 도약을 목표로 공공과 민간의 협력적 투자와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남북한 건강수준의 격차 해소와 통일 후 의료비 절감을 위해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예방·증진사업도 추진될 필요가 있다. 분단 70여년 동안 남북한은 경제수준 뿐 아니라 건강수준에서도 매우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건강수준의 차이는 통일 이후 의료비 지출의 급증으로 이어져 건강보장제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건보공단은 그 동안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검진체계를 운영해 온 노하우와 노인 및 만성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건강증진사업 운영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내 의료취약지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검진 및 건강증진사업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내 병원진료의 접근성이 매우 낮은 의료취약지역을 대상으로 기본 건강검진 및 진료와 영양상담 등이 가능한 이동출장 진료버스를 운영하고(건보공단의 ‘사랑실은 건강천사’ 사업 활용), 도시와 농어촌 등 시범사업 지역을 선정하여, 북한 주민의 특성에 맞는 건강증진 및 건강개선을 위한 공동사업모델을 개발하는 것도 보건의료분야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실현가능한 접근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건보공단의 ‘노인건강교실’, ‘건강백세 운동교실’ 사업 활용).

이를 위해, 보건복지분야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는 복지부(국제협력관)와 남북간 교류협력 및 인도적 대북지원을 담당하는 통일부(교류협력국, 인도지원과 등)의 주도 하에 관련 공공기관 및 연구단체, 대학 및 전문가, 노동·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보건의료분야의 남북 교류협력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민·관 공동협의체’ 구성하고, 각 기관의 고유기능 및 강점을 고려한 공동사업 또는 기관별 사업을 개발하여, 이를 단계적으로 추진 및 점검하는 등 지속적인 민·관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는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상호 협력의 동반자로 실질적이고 발전적인 남북 보건의료분야의 교류협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독일의 경우, 동서독이 분단되어 냉전이 지속되었던 시기에도 양국 간의 지속적 교류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1972년에 동서독 기본조약 제7조 6항(1974.12.21)에서 보건분야의 협력을 규정하고, 1974년에는 동서독 보건의료 협정(1974.4.25.)을 체결하고 이를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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