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실태조사-관리위원회 설치 선제적 준비 필요

김신곤
고려대의과대학 내과 교수
통일보건의료학회 학술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 북한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질병은 역시 영양부족이나 감염성 질환이 아닌 심혈관질환이며, 북한 전체 사망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것은 흡연, 염분 섭취 증가 등 북한주민들의 생활습관이 좋지 않은데다, 만성질환을 관리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붕괴하면서 질병에 걸린 경우 치사율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개발도상국가들의 질병부담을 설명하는 ‘이중 부담(double burden)’ 이론이 있다. 영양불량이 만연한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높은 모성 및 영유아 사망률과 감염성 질환의 이환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영양박탈을 경험한 채 생존한 아이들이 이후 경제개발과정에서 만성질환에 취약한 인구세대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90년대 후반 최악의 영양학적 박탈을 경험한 국가이다. 따라서 이후 경제발전 과정에서 그 어떤 개발도상국보다도 만성질환과 같은 비감염성 질환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통일 이행기 북한의 비감염성 질환의 발병률 증가와 이로 인한 사회적 부담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통일 이행기 북한의 만성질환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세가지 창이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남한화 과정에서 건강변화의 추이, 사회주의 체제 이행국들의 사례, 그리고 최근 북한의 건강구조 변화 양상이다. 그 중에서도 이미 서구 국가 못지 않은 만성질환 구조가 정착된 우리나라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의 사례가 향후 북한 비감염성 질환 관리에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필자는 2008년 10월부터 NOrth Korean Refugees IN South Korea(NORNS) 연구를 진행하며, 특별히 생활습관병을 중심으로 북한이탈주민의 건강 상태를 추적해오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은 남한주민과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오랜 기간 상이한 생활습관과 환경에 노출되어 왔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서구화된 환경적 조건에서 살아온 남한주민에 비해 북한이탈주민의 질병 발생 양상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코호트를 통하여 확인된 몇 가지 결과를 요약하면 △1990년대의 북한의 극심한 기아사태의 여파로 당시 청소년기를 지낸 30대의 경우 남한주민들과 대비하여 키가 남녀 각각 6 cm 및 5cm가 적었음 △북한이탈주민들의 복부비만 정도는 남한 사람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적으나(남자 1/6 수준, 여자 1/3수준), 대사증후군의 유병률은 이미 남한의 그것과 비슷해짐. 대사증후군은 당뇨병의 위험요인인데다, 이 연령층 북한이탈주민의 췌장의 인슐린분비기능은 매우 낮게 나타났기에 이후 당뇨병 유병률의 급격한 증가를 예상하게 함 △남한 입국시 정상체중이었던 북한이탈 주민 중 약 3/4가 체중이 증가하였으며, 남한 정착 후 8년 정도 지나면 남한 주민들과 비슷한 비만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남. 특히 남한 입국후 5% 이상 체중이 증가한 사람은 체중증가가 없었던 사람에 비해 대사증후군을 가질 확률이 10배까지 증가함.

이상의 자료를 종합하면, 북한이탈주민은 소위 ‘마른비만’(비만정도가 심하지 않으나 대사위험도는 비만자와 유사) 양상을 보이며, 이후 이들의 남한화 정도가 진행함에 따라 대사성질환의 위험성은 우리의 그것을 뛰어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우리 안에 이미 다가온 통일’이다. 따라서 이들의 건강상태를 추적하는 것을 넘어 이들이 비감염성 질환에 이환되지 않도록 중재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면, 이후 통일시대 북한지역에서 outbreak가 될 비감염성 질환에 대한 선제적 준비가 될 것이다.

북한비감염성 질환관리 중장기 전략은 통일 전 남북보건의료협정 체결 시점까지 1기(경색 완화기), 이후 통일 시점까지 2기(교류협력 확대기). 그리고 통일 직후 완전한 통합까지의 3기(통합 과도기)로 나눌 수 있다.

1기 경색 완화기에는 거점 중심의 교류협력모델 창출과 남북한 공동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남한의 상급종합병원 및 국공립병원과 북측 각급별 거점 의료 기관과의 1:1 결연을 통해 인적인 교류와 더불어 현대화에 협력한다. 거점 의료기관 관할 지역의 비감염성 질환 이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사업을 시행한다. 또한 우리의 국민건강영양조사와 유사한 형식으로 북한의 비감염성 질환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질환별 우선순위를 도출한다.

2기 교류협력 확대기에는 시군별 거점병원을 전국적으로 확대, 북측 최 일선 보건기관인 리·동 진료소의 호 담당 의사를 지원, 협력하여 비감염성 질환 유병자를 발굴, 관리한다. 또한 지역 진료소를 기반으로생활습관병예방시범사업을 진행한다. 이를 관장할 거버넌스로 남북 만성질환 공동관리위원회를 설립하고 이후 남북한 질병관리본부로 확대, 발전시킨다.

3기 통합 과도기에는 남북한 전역에 대한 공동영양조사를 실시하고, 한반도의 만성질환 지도를 구축한다. 일반 인구집단으로 생활습관 중재를 확대하고,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맞춤형 생활습관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통일이전 교류기부터 이후 통일 이후 일정기간 남북주민의 건강은 남북 보건의료인 각각의 주도성과 책임성이라는 원칙하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서로의 보건의료체계와 인력구조, 의료 문화나 수준 등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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