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경험 ‘남북 보건의료협정’에 고려해 볼만

통일시대의 보건의료체계
남한식 사회보험방식 장점 이용
북한의 의료전달체계 전통 반영

윤석준
고려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지난 4월말 판문점에서 남한과 북한의 최고 정치지도자가 만나 정상회담을 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북한 최고지도자를 만난 적은 있었지만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이 성사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반도 통일과 관련 작금의 주요 주제는 누가 뭐래도 한반도 비핵화이다. 향후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항구적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해 본다.

그런데 비핵화의 문제가 물론 중요하지만 한반도에 평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남북한간 지속적인 교류의 끈을 가져야 한다. 그런 교류의 끈 중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보건의료”이다.

독일의 경험을 살펴보면 1960년대까지 할슈타인 원칙에 근거하여 동·서독간 냉전이 지속되다가 1970년 동·서독 정상회담, 1972년 기본협약, 1974년 보건협정 등이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 특히 1974년 보건협정 이후 항생제 등 대규모 원조가 계획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건협정 16년 후인 1990년에 마침내 통일 독일의 대업이 이뤄진 바 있다.

북한은 1970년대 이후 보건의료체계에 신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된다. 실제 건강수준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를 살펴보면 영아사망률, 모성사망률, 결핵유병률 등에서 남한보다 4~8배 이상 더 높은 상태이다. 더불어 일반적으로 저개발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염병 위주의 질병부담 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질환의 부담도 적지 않게 관찰되고 있어 이중질병 부담(double burden)의 시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북한 정권 수립이후 사회주의 의료체계를 구현하기 위해 중앙집중화 된 체계를 만들어 냈다. 전달체계 측면에서는 진료소, 인민병원, 도병원, 중앙병원 등의 급성기 질환 중심 진료체계가 형식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 그밖에 B형간염과 다제내성 결핵치료를 위한 별도의 전달체계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재원조달측면에서는 소위 “무상의료”를 표방해 왔던 북한식 사회주의 의료체계의 흐름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의약품, 의료장비, 치료재료 등의 소모품이 부족하여 탈북자 등의 증언에 의하면 장마당에 가서 필요한 의약품을 공급해 와야만 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요약하면 중앙집중화된 획일적인 의료전달체계는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보건의료체계를 지탱해야 할 재정적 지원체계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공급주체가 거의 100% 공공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장마당 등의 체계외적인 시장 기전에 의해 주요 의료 소모품이 공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 옥류 아동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이 입원 환아를 돌보는 모습.

남한의 경우 질적 수준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으로 지적받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는 주요 공급 주체가 민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공적 건강보험체계의 영향 하에 있지만 의료이용량의 조절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수가 구조의 왜곡 등으로 인해 다빈도 의료 이용, 중복 의료 이용, 문지기(gatekeeper)체계의 부족으로 인한 일차의료의 기반 붕괴, 대형종합병원으로의 쏠림 현상 등이 지적되고 있다. 특히 의료이용의 적절한 조절기전이 부족한 문제는 경우에 따라 과도한 의료이용으로 귀결되고 있다.

현재 남한에는 약 3만명의 탈북자가 등록되어 있다. 탈북자의 경우 하나원 등에서 일정시간 교육기간을 이수하면 의료비의 보장을 위해 의료급여 대상자로 분류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 일정한 경제력을 갖추면 건강보험 대상자로 이동한다.

탈북자 의료급여 의료이용 자료를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관찰된다. 초기 정착 단계를 지나 일정 시간에 이르면 동일한 경제수준을 가진 남한의 의료급여 대상자보다 의료이용빈도 및 의료비가 몇 배 이상 급등한다는 점이다. 이점은 여러 측면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필자의 판단으로는 남한의 의료체계에 적응한 이후 일종의 보상심리 등이 작용하면서 과다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이 문제 역시 의료이용 빈도 등을 제어할 장치가 없는 남한 의료체계의 근본 모순에서 비롯될 것이다.

독일 또한 통일 직후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화폐·경제·사회 협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당시 대표적인 동독 청년들의 시위 구호인 “마르크가 안 오면 우리가 간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서독으로부터 가시적인 대규모 경제지원이 없으면 동독 청년들이 서독으로 대량 이주하겠다는 등의 혼란스런 상황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서독 정부가 관련 협약을 서두르게 되고 동·서독간 보건의료체계의 통합은 급격히 서독 방식으로 흡수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독의 일차의료체계 중 모범이 된다고 여겨졌던 폴리클리닉(polyclinic) 시스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남북한 의료제도 비교에 있어 시사점은 통일 보건의료체계를 지향할 때 재원 마련 기전에 있어 남한식 사회보험 방식의 장점을 최대한 인용하되 북한이 갖고 있는 의료전달체계의 전통과 그 중에서도 일차의료의 강조 등은 무시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독일통일의 교훈이고 현재의 남한내 혼란스러운 의료의용 패턴을 바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변곡점이기 때문이다.

남북한간 의료체계는 그 역사적 뿌리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 왔다. 남한은 1948년 남한정부가 수립된 이후 전쟁 등으로 인한 빈곤 탈출을 위해 경제발전 계획을 갖추었고 적어도 그 결과에 있어서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료제도를 비롯한 사회 인프라 재원 마련이 충분하지 않아 민간 자본을 끌어 들이는 방식으로 제도를 갖추었다. 그 결과 사회보험 방식의 보편적 의료서비스 이용이라는 큰 대의에는 성공을 이뤘으나 과도한 민간의료 공급 중심 체계에서 비롯되는 전달체계의 빈곤, 다빈도 의료 이용 등의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이에 반해 사회주의식 중앙집중화된 의료체계로부터 시작한 북한은 초기의 인프라 구축에는 어느 정도 질서가 있었으나 그 이후 시스템 운영재원 마련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무상의료에서 사실상 기형적인 유상의료로 전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남북한 의료제도의 역사적 발자취 속에서 통일을 앞당기고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한간 지속적인 교류의 끈을 확보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한내 현재 국회 계류중인 북한 보건의료에 관한 지원 법률 안이 통과되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한 책임있는 당국자간 보건의료협정을 체결하여 교류의 토대를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되면 의사를 비롯한 남북한 의료인간 면허 상호인정을 위한 공동 연수, 의약품 등의 필수 의약품지원 등이 통일을 염두에 둔 체계적인 계획하에 질서 있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독일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듯이 혼란을 줄이면서도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