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모자건강 증진 위한 합의서’ 채택 바람직

황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 박사

[의학신문·일간보사] 그 어느 해보다도 추웠던 지난겨울이었기에 올해는 따뜻한 봄이 더욱 더 기다려지는 해이었다. 4월 27일 따뜻한 봄날,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져 한반도에는 믿기지 않는 평화의 봄까지 찾아왔다. 이러한 분위기에 고무되어 정부를 비롯한 여러 민간단체에서는 남북 교류협력에 대한 적극적이고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 보건의료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월에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남과 북이 동시 입장한 평창동계올림픽과 뒤이은 남북 합동예술 공연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남과 북이 분단된 지 65년이 지났지만 하나의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평균 기대수명은 82.3세이고, 북한은 71.7세이다. 건강수명은 우리는 평균 73.2세인 반면, 북한은 평균 64세로 남북한간 10여 년의 건강 격차를 보이고 있다. 또한 국가의 보건의료수준을 대표하는 지표인 모성 및 영아 사망률은 북측이 우리 남측의 6~7배에 이른다. 5세 미만 아동의 만성영양결핍비율은 북측이 28%로 우리의 약 14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향후 남북 빈번한 접촉과정에서 이질감을 초래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건강 공동체를 구현하는 데 사회적 비용부담을 가중시켜 남북 동반성장을 저해할 것이다.

더욱이 현재 북한의 출산 연령층이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식량난을 겪은 ‘고난의 행군시대’에 태어나 영유아기에 극심한 빈곤과 기아를 경험한 세대이다. 임산부의 30%가 영양부족으로 인한 철결핍성 빈혈로 확인되었는데, 빈혈은 저체중아 출산이나 조산 위험성을 증가시킨다. 북한의 5세 미만 사망아의 사망원인 중 20%(2015년)가 출생시 체중이 저체중이거나 조산 때문이었다. 장기간의 영양결핍상태로 성장한 가임기 여성의 취약한 건강상태가 출생아에게까지 되물림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모성과 출생아 건강의 선순환을 도모하는 남북 협력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북한의 ‘인민보건법’ ‘어린이보육교양법’ ‘노동법’ 등의 법령에는 모성을 사회주의체제의 일꾼을 생산하는 중요한 대상으로 간주하여 계층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국가에서 완벽하게 관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산원시설을 비롯한 의료기관을 통하여 모든 임산부들을 등록하고, 무료로 체계적인 의료서비스와 해산방조를 제공한다. 임산부에게는 8개월간의 산전·산후휴가를 보장하고 노동시간 중에는 젖먹이는 시간을 보장한다. 대도시 지역에 아동병원을 설치, 운영하고 탁아소 및 유치원에는 의료일꾼을 배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성과 아동의 건강이 이렇게 취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모성·아동 건강 악화 요인= 북한은 1990년대 초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면서 경제가 침체되었다. 이후 점차 회복되고 있지만 매년 자연재해의 발생과 만성적인 식량 부족으로 영양결핍 현상이 만연화되었다. 한편, 최근 식수원의 개선으로 설사증으로 인한 사망이 감소되었지만 여전히 5세 미만 사망아동 중 6%가 예방가능한 설사증이 원인이 되어 사망한다.

이와 같이 아동 사망이 영양불안정(nutrition insecurity)을 비롯한 식수 및 위생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초래됨에 따라 단독 개별사업으로 이루어지는 수직적 사업(vertical project)과 분절화 된 접근을 탈피하고, 사회환경적 요인 등 근원적인 요인과 병행한 접근을 통해 악순환 고리를 차단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남북협력은 모자 1000일 사업부터= 2012년 UNICEF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북한은 생후 6개월 이후부터 영양결핍을 보인 아동비율이 점차 증가하다가 만2세 때 가장 높아져 36%에 이른다.

이후 만 5세가 될 때까지 이러한 영양결핍상태는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생 후 만 2세까지의 불량한 영양상태는 이후 발달장애 및 학습장애 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렇게 성장한 경우에는 성인이 되어서도 고혈압, 당뇨 및 심장질환 등의 만성질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영양결핍 임부는 출생아의 생명을 위협하는 저체중 출산이나 조산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임신기에서부터 출생아가 만2세가 되는 1000일 기간의 집중적인 영양지원과 건강투자는 평생 건강한 삶의 출발을 보장한다. 유엔 등 국제기구의 연구에 의하면 ‘모자 1000일간의 사업’은 사망률 감소는 물론, 질병부담 감소, 교육성취도 증가 및 노동생산성 향상 등으로 인하여 GDP 손실을 2∼8% 방지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입증되었다.

북한 상황에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의료서비스(Level of Care)가 일정 생활권내에서 공급되도록 지역화(Regionalization)하고 주산기 고위험 요인이나 합병증의 조기발견 및 치료를 위한 응급산과의료서비스체계(Emergency Obstetric Care Services System)를 구축하여야 한다.

◇‘남북 모자건강 증진 합의서’ 기대= 모성과 아동의 건강증진을 위한 남북 협력은 진정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의 출발점이자 남북 건강수명의 격차를 완화하는 해법의 하나로서, 남북한간 동질감을 조기에 회복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남과 북 모두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고령화의 심화로 차세대 양질의 인적 자원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바, 모성과 아동의 건강증진사업이 사회적 투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남북 모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안정적인 행정적, 재정적 기반아래 남북교류협력이 조기에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가칭 ‘모자건강 증진을 위한 합의서’를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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